"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합니다." "피고인들은 모두 나와서 자리에 앉으십시오."
23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서관 417호 형사대법정. 재판장이 시작을 알리자 피고인 박근혜(65) 전 대통령이 초췌한 얼굴에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띠고 들어섰습니다. 헌정 사상 3명째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의 재판이 시작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자리에 앉은 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법정에 들어섰으나 40년 지기로 알려진 두 사람은 서로 인사도 주고받지 않았습니다.
줄곧 앞만 응시하던 박 전 대통령은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와 짧게 귓속말로 대화할 뿐 최씨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재판장이 두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을 시작으로 재판을 진행하자 박 전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질문에 답했습니다. 최씨는 감정적으로 흔들린 듯 울먹이는 표정을 짓고 코를 훌쩍였으나 박 전 대통령은 내내 아무런 표정도 띄우지 않았습니다.
공소유지에 나선 검사와 재판장은 이날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을 '피고인'이라고 지칭했습니다. 검사는 모두진술에서 박 전 대통령에 관해 '피고인'으로 부르면서 간간이 '전직 대통령'이라는 표현도 썼습니다.
↑ 박근혜 재판/사진=연합뉴스 |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 40분께 법무부 호송차에 타고 서울구치소를 출발해 9시 10분께 중앙지법 청사에 도착했습니다.
법정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으나 포승줄로 묶이진 않았습니다. 왼쪽 가슴에 구치소 표식이 달려 있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때부터 대리인으로 활동해온 유영하·채명성 변호사를 비롯해 여러 명이 맡았습니다. 법원 부장판사 출신 이상철 변호사 등도 출석했습니다.
검찰에서는 특별수사본부의 핵심 실무진이었던 서울중앙지검 이원석 특수1부장과 한웅재 형사8부장 등 검사 8명이 출석했습니다.
법원은 이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법정 안에 10명이 넘는 방호원과 사복 경찰관들을 배치하는 등 경비 수준을 강화했습니다. 다행히 재판은 별다른 동요나 소란 없이 차분한 분위기 속에 이뤄졌습니다.
박 전 대통령과 함께 뇌물수수 등 혐의로 피고인 석에 선 최씨는 "옆에서 40여년을 지켜본 박 전 대통령을 재판받게 한 제가 죄인"이라며 통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검찰이 몰아가고 있다"며 "이 재판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허물을 벗겨주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대통령으로 남게 됐으면 좋겠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삼성 일은 박원오(전 대한승마협회 전무)가 다 한 것이고, 말이나 차도 다 삼성 소유"라며 "삼성 합병과 뇌물로 엮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검찰을 비판했습니다.
↑ 박근혜 올림머리/사진=연합뉴스 |
한편 구속되고 난 뒤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박 전 대통령은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에 나오면서까지 특유의 '올림머리'를 고수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실핀을 사용하지 못하는 여건에 있는 만큼 현직에 있을 때처럼 정갈한 모습은 아니였습니다.
법무부 교정본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서울구치소의 수용자 구매물품 가격표를 보면 기본적인 음식물이나 생필품 등 외에 여성 수용자는 머리를 정리할 수 있는 용품을 별도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여기엔 집게핀과 머리핀도 포함돼있어 박 전 대통령은 구치소에서 영치금으로 핀들을 구매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서울구치소에서 '집게핀'의 가격은 1천660원, '머리핀'
이 밖에 머리끈은 330원, 머리띠는 830원에 판매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날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 함께 피고인석에 앉은 '비선 실세' 최순실(61)씨도 박 전 대통령이 옆 머리를 정리한 것과 같은 머리핀을 이용해 머리를 한 가닥으로 묶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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