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윤모 '겨울꽃' |
그는 "극한의 육체적 고통과 생명의 위기를 겪고 나서 야산 땅 속을 밀고나온 작은 꽃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 그 전에는 거대담론과 사회 문제에 주목했는데 사소하고 잔잔한 생명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화가의 붓이 향하고 나서야 꽃이 의미를 가졌다는 점에서 김춘수 시 '꽃'이 절로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 정일 '작은 연가' |
김병종은 "시와 그림이 서로의 들러리가 되지 않고 수평적 관계를 맺는다. 시적인 언어와 회화적 표현은 한뿌리에서 나오며, 시적 상상력이 그림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시의 힘에 기대어 그가 그린 꽃은 붉고 크다. 커다란 한송이 가운데 검은 점이 두드러진다. 바로 꽃의 눈동자이자 심장이다. 김병종은 "마치 숨쉬는 것 같은 생명력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구순 화가 박돈은 이육사 시 '꽃'을 거친 돌에 핀 꽃으로 그렸다. '북(北)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라는 시어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 황주리 '흔들리며 피는 꽃' |
'꽃과 여인의 작가' 김일해는 청록파 시인 김영랑의 대표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그렸다. 꽃 중의 꽃으로 알려진 모란의 화려하고 품위 있는 자태와 찬란한 슬픔의 봄이 진하게 배여 있다.
색면 추상화가 이명숙은 안도현의 시 '개화'를 추상적으로 그렸다. 주황색과 초록색, 노란색 등 강렬한 색 조합에서 '햇볕은 일제히 꽃술을 밝게 흔들고' 등의 싯귀가 아른거른다.
황주리는 도종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해바라기 꽃 속의 연인으로 표현했다. 인기 작가 정일은 1988년 세상을 떠난 박정만 시 '작은 연가'를 로맨틱한 분위기로 그렸다. 병고에 시달리던 박 시인이 작고하기 직전에 갤러리서림이 화가 20명이 꾸며준 시화전과 시화집을 출간해 화제가 됐다.
↑ 김병종 '꽃' |
부산 작가 임상진은 나태주 시 '풀꽃'을 고결한 자태의 꽃으로 표현했다. 화면에 입체를 가미시키는 황은화는 김소월 '산유화'를 형상화했다. 컴퓨터 아티스트인 김석은 마종기 시 '꽃의 이유'를 제작했다. 우리 인생을 꽃을
시가 있는 그림전은 32회 동안 작가 117명이 시 523편을 동양화, 서양화, 판화, 조각, 설치 등 미술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시화전에 출품된 작품들은 '시가 있는 그림 달력'으로 만들어진다. 전시는 26일부터 내년 1월 11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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