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층 건물 옥상에서 평양 시내를 내려다보는 북한 여성을 찍은 중국 사진작가 유양 리우 작품 `DPRK` 연작. [사진제공 = 주독일한국문화원] |
독일인 300여명이 영상 속 문양자 할머니의 비극에 집중하고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아버지(문상국, 당시 31세 기자)를 잃은 할머니가 아픈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후퇴하던 국군 헌병과 경찰이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예비검속자 등 7000여명을 무참히 학살한 사건이었다.
이념 갈등과 광기로 점철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할머니의 독백이 정윤선 작가의 다큐멘터리 '문영자, 그녀의 이야기'에 저장돼 독일까지 왔다. 지난달 19일 베를린 포츠담광장에 위치한 주독일한국문화원에서 개막한 '프로젝트 온 6 -한반도 분단의 기억' 전시장 벽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 과거 동·서베를린을 가르는 장벽이 있던 쿨투어포룸의 성 마케우스 교회 앞 광장에 설치된 한석현·김승회 작가의 남북한 예술정원 작품 'Das dritte Land : 제3의 자연'. |
↑ 과거 동·서베를린을 가르는 장벽이 있던 쿨투어포룸의 성 마케우스 교회 앞 광장에 설치된 한석현·김승회 작가의 남북한 예술정원 작품 'Das dritte Land : 제3의 자연'. 맞은편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콘서트홀이 보인다. |
이 곳을 찾은 독일 대학생 토니는 "독일도 한때 분단 경험이 있어서 한국 역사에 깊이 공감했다. 남한과 북한이 남매처럼 미래에 다시 합쳐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5월에는 과거 동·서베를린을 가르는 장벽이 있던 쿨투어포룸의 성 마케우스 교회 앞 광장에 한석현·김승회 작가의 남북한 예술정원 작품 'Das dritte Land : 제3의 자연'이 설치됐다. 남북한을 가로지르는 백두대간을 정원의 산맥으로 형상화하고 한반도에서 자생하며 흰꽃을 피우는 야생화 45종을 심었다. 한여름이 되자 두루미꽃, 들바람꽃, 백작약, 물매화 등이 뽀얀 꽃잎을 드러냈다. 두 작가는 예술과 자연의 힘으로 남과 북의 경계가 사라지는 유토피아적 생태계를 재현했다고 한다. 정원을 거닐며 경계를 극복하는 순간을 만끽하라는게 작품의 메시지다.
그렇다면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30년이 흐른 지금 독일 사람들은 행복할까. 적어도 동독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베를린 방문 직전에 찾은 옛 동독지역인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시에서는 극우 세력인 네오 나치 조직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반난민·반이슬람 정서를 내세운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도 옛 동독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1990년 흡수통일된 후 갑자기 '2등 국민'으로 전락한 동독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 과거 사회주의 정책에 대한 향수가 그 발판이 됐다. 서독지역에 비하면 여전히 임금이나 노동생산성이 20∼30% 떨어진다고 한다.
↑ 지난달 19일 독일 베를린 포츠담광장에 위치한 주독일한국문화원에서 개막한 '프로젝트 온 6 -한반도 분단의 기억'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한국전쟁 당시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정윤선 작가의 다큐멘터리 '문영자,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
[베를린 =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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