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연합뉴스] |
한국영화 100년사(史) 산증인인 그를 4일 오전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에서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 사상 처음 촬영 감독이 회고전 주인공이 된 소감은 어떨까. '격조와 파격의 예술가'로 불리던 그는 지금껏 138편을 촬영했다. 김기영, 유현목, 김수용, 임권택 등 기라성 같은 거목들 영화는 거의 그의 카메라를 거쳐 탄생했다.
"내가 영화를 시작한 지 10년쯤 됐을 때였나. 히치콕과 존 포드 감독 회고전이 열린다는 기사를 외신에서 봤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저들 나이가 될 때까지 영화를 할 수 있을까···. 그 뒤로 60여 년이 흘렀고, 나는 지금도 카메라를 들고 있다. 최근 일본 평론가 사토 다다오 씨가 이런 편지를 보내오더라. '내가 아는 상식에서 촬영 감독 회고전을 본 적이 없다. 한국은 대단한 나라다.' 개인적으로 영광이고, 모든 촬영 감독들에게 이 순간이 하나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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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신 무장'의 본보기가 된 게 춘사 나운규의 '아리랑'(1926)이다. 정 감독 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이다. "전체주의 시대에 영화를 통해 항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여건에서도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리랑' 같은 명작을 탄생시킨 거다. 그 정신을 후대가 이어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더 좋은 영화가 계속 나올 수 있다. 슬프고 열악했던 시절을 겪어온 우리 세대가 후배들에게 드리고 싶은 당부다."
그간 찍은 것들 중 가장 애착가는 작품을 묻자 그는 자책부터 했다. "138편을 찍었으나 그중 40~50편은 대단히 부끄럽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다. 젊을 땐 내가 찍은 흥행작, 수상작을 대표작으로 댔는데, 철딱서니 없는 짓이더라. 이 나이 쯤 되니 이젠 내가 부끄럽게 여기던 40~50편이 교과서처럼 나를 지배한다. 내가 열심히 찍고, 다수가 인정해준 영화보다 외려 이 실패한 영화들이 내게 진실로 좋은 교과서였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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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말년에 다다르고 있는 그도 혹 '못 다 이룬 꿈'이 있을까. 이에 대해 묻자 그의 입가로 은은한 미소가 감돈다. "이제 더 만족을 채운다는 것 욕심 아니겠냐"면서 그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총 38명의 영화 감독과 작업했다. 임권택과는 30년 간 20편 정도를 함께했고. 그 다음이 김기영, 김수용, 유현목 순이다. 그러니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건 3분의 1이 이들 덕이다. 나머지 3분의 1은 매해 6개월 이상 떠돌이 생활을 했던 남편을 대신해 집 지켜준 아내 덕이다. 그 나머지가 내 능력일
어쩌면, 그야말로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말년의 양식'의 표본일 지 모른다.
[부산 =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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