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주인공들이 한밤중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허겁지겁 뛰어 내려가던 계단. 갑자기 불이 켜지자 마치 숨어드는 바퀴벌레처럼 이들이 빠르고 조용하게 사라지던 터널. 이 가족이 피자 상자를 접는 아르바이트를 따내던 피자 가게.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4관왕이 된 영화 '기생충'이 촬영된 서울 시내 곳곳에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11일) 연합뉴스 기자가 찾은 촬영 장소들에서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인증샷'을 남기며 수상을 축하했습니다. 주변 상인들도 늘어난 손님이 반가운 눈치였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 가족이 피자 포장 상자를 접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서울 동작구의 피자 가게 앞에는 봉준호 감독의 사인과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손님 29살 박병률 씨는 현수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평소 봉준호 감독을 좋아한다"면서 "오스카 수상 소식을 듣고 어제부터 기생충에 등장한 주요 촬영지들을 찾아다니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2주 전에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는 미국인 23살 저스틴 탁 씨는 "미국 영화관에서 기생충을 인상 깊게 봤는데, 마침 한국 여행 중에 오스카상 수상 소식을 듣고 촬영지를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함께 온 친구 23살 멜리사 세라노 씨도 피자 가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세계관과 한국의 이야기가 신비롭게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연합뉴스 기자와 얘기를 나눈 후 가게 안으로 들어가 피자를 주문했습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동네 슈퍼에도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서울 마포구에서 '기생충' 촬영지로 쓰인 슈퍼를 운영하는 73살 김경순·77살 이정식 부부는 "영화 마니아라는 사람이 물어 물어서 슈퍼를 찾아오기도 하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들러서 사진도 찍고 물건도 사 간다"고 말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영화에서 전봇대 옆 테이블로 소주를 가져가는 장면을 찍는 걸 봤는데, 한 세 번 정도 찍을 줄 알았는데 수십 번이나 소주를 테이블로 가져가더라"면서 "수상 소식에 너무 기뻐서 잠이 안 왔다"고 덧붙였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비를 맞으며 뛰어가던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하문터널 인근은 근처를 다녀간 시민들이 인증 사진을 찍어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명소가 됐습니다.
이 동네 주민 29살 박소현 씨는 "평소에도 산책로로 가끔 다니는 길이지만 수상 소식을 듣고 나서는 더 특별하게 보인다"면서 "우리에게는 익숙한 길거리가 해외 영화 팬들에게는 새로운 느낌일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박씨는 "간혹 근처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앞으로는 더 늘어나지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주변 상인들도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소식에 반색하고 있
자하문터널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57살 김주삼 씨는 "영화를 촬영할 때 스태프들이 우리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오곤 했다"라며 "내가 촬영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영화가 큰 상을 받는 걸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자긍심도 생긴다"라며 웃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