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글씨의 비밀은, 한글 자음 '미음(ㅁ)'에 있죠."
구본진 변호사(56)가 이달 출간한 책 '부자의 글씨'에는 세기를 수놓은 자산가들의 서명이 분석돼 있다. 일론 머스크 필체는 세로선이 강하게 우상향하고, 빌 게이츠 필선은 직선보다 곡선에 가깝다. 슈퍼리치 35명의 필체를 분석해 책으로 출간한 그를 충무로 매경 본사에서 최근 만났다.
↑ .`부자의 글씨`를 출간한 구본진 변호사를 서울 충무로 매경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글씨는 내면의 수양이며, 필체를 바꾸면 삶도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김재훈 기자] |
구 변호사가 필적에 관심을 둔 건 그의 강력부 검사 시절로 돌아간다. 21년간 검사로 재직하며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장까지 역임한 그는 연쇄살인범들 글씨에서 묘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필압이 강했고, 선(線)이 선을 침범했다.
후일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가 상반됨을 발견한 뒤로는 필적 전문 컬렉터로도 임했다. 이번 책 '부자의 글씨'는 항일선열 필적에 대한 관심의 외연을 '슈퍼리치'로 확대한 결과물이다.
부자의 글씨를 유심히 살피니 서로 관통하는 하나의 특징이 발견됐다. 큰 부자들은 한글 자음 미음자를 굳게 닫았다.
↑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생전 필적. "굳게 닫은 자음 미음(ㅁ)자에 그의 절약정신과 빈틈없는 마무리 성격이 보인다"고 구 변호사는 강조했다. [사진 제공 = 다산북스] |
"꾹꾹 눌러 닫은 미음자는 절약과 빈틈없는 완성도를 의미해요. 동시에 오른쪽 윗부분은 모가 나지 않는데, 틀에 박히지 않아 혁신적 사고가 가능함을 동시에 말해줍니다. 오늘날 태어나셨다면 더 큰 부자가 되셨을 필체예요."
↑ 록펠러의 서명. [사진 제공 = 다산북스] |
현 시대 최고 거부인 제프 베조스의 글씨는 전체적으로 글씨가 우상향한다. 머스크도 마찬가지다. 생전의 스티브 잡스도 이름의 마지막 알파벳 's'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비틀어서 45도로 올렸다. 마크 저커버그 글씨엔 우상향 세로선은 없지만 서명의 알파벳 'g'를 유난히 길게 썼다. 구 변호사는 이를 "돈주머니"로 해석한다.
"머스크 서명을 보면 그가 비범한 인물임을 알게 돼요. 봉우리가 커 열망이 있음을 드러내죠. 저커버그 필체는 부드러운데 이는 개방적인 사고를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마크 주커버그의 서명. [사진 제공 = 다산북스] |
↑ 제프 베조스의 서명. [사진 제공 = 다산북스] |
구 변호사는 만해 한용운 등 독립운동가들의 필적을 수집했다. 처음 모은 독립운동가 필적은 곽종석(1846~1919) 선생의 것이었다.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독립호소문을 보내 옥고를 치른 인물이다. 항일지사 글씨는 느리고 작지만 모서리 각이 선명한데 친일파 글씨는 크고 빨랐다. 필선을 닮은 삶을 걸어간 인물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는 평생 글씨를 탐구키로 했다.
"당시 '시가로 3만원쯤 한다'며 곽 선생님 글씨를 받았어요. 값을 떠나 의미가 깊었죠. 850여명의 친필 1000여점을 모았는데 후일 기증하려고 모은 거에요."
↑ 일론 머스크의 서명. [사진 제공 = 다산북스] |
구 변호사는 성공한 인물의 필적을 종합해 하나의 글씨체를 창조하겠다는 계획이다. 습자 교과서도 만들겠다는 포부다.
구 변호사는 "글씨는 수양이고, 자기를 반영한다"며 "필체가 변화하다 보면 누구나 원하는 자아(自我)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김유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