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공리단길과 ‘경춘선숲길’
지금은 사라진 경춘선.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철로를 따라 통일호와 무궁화호가 강원도 춘천까지 달렸다. 수많은 청춘들의 낭만을 책임지던 그 열차는 사라지고 이제 흔적만 남았다. 다행히 철로는 남아 지금의 사람들은 그 흔적을 따라 걷곤 한다. 어느 겨울, 화랑대역에서 출발해 ‘공리단길’로 불리는 공릉동 도깨비시장까지 경춘선 숲길의 일부 구간을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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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숲길은 서울시가 경춘선 폐선 부지를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서울시와 경기도 구리시의 경계인 담터마을에서 월계역 근처 녹천중학교까지 이어진 약 6km 길이다. 겨울 햇빛 아래 반짝이는 옛 철로를 따라 걷다 보면 다정한 풍경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선 이, 팔짱을 끼고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도 볼 수 있다.
마지막 경춘선 열차가 달리던 풍경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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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로부터 시계방향)비대칭으로 지어진 화랑대역, 경춘선 철길을 따라 걷는 길, 문정왕후의 능인 태릉 |
먼저 경춘선에 대해 알고 가자. 서울 청량리와 강원도 춘천을 잇는 철로로 민간자본이 만든 철도다. 일제강점기였던 1939년 경춘철도주식회사에서 선로를 놓았는데, 조선총독부가 이미 철도가 설치된 철원으로 강원도청을 옮기려 하자, 이에 반발한 춘천의 부자들이 사재를 털어 서울에서 춘천까지 연결하는 철도를 만들었다. 그 철도가 바로 경춘선이다. 당시 철도 대부분이 일제의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한 것과 달리, 경춘선은 일본 중심의 행정에 반발해 조선의 자본으로 직접 만든 철도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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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랑대역 주변 곳곳에 옛 철로의 낭만이 남아 있다. |
이용객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복선전철화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고, 1999년에 복선전철이 착공됐다. 그리고 기존 철로의 절반을 활용해 11년 만인 2010년 12월 21일 개통했다. 복선화 전에는 무궁화호가 하루 38회 운행했지만 이후 137회로 늘어났고 춘천에서 수도권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었다. 경춘선 무궁화호는 2010년 12월 20일 밤 10시 3분, 제1837열차가 청량리역을 마지막으로 출발하면서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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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된 옛 전철(좌)과 화랑대역 시계탑(우) |
깊은 소나무 숲속 문정왕후의 능
화랑대역에서는 태릉이 가깝다. 조선 왕릉의 이름이지만 지금은 주변의 지역명을 대신하고 있다. 태릉은 문정왕후가 혼자 잠들어 있는 무덤으로, 왕비의 단릉(單陵)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웅장한 느낌을 준다. 중종의 두 번째 왕비였던 문정왕후는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아들 명종을 대신해 수렴청정을 했고, 수렴청정이 끝난 후에도 권력을 놓지 않았다. 어머니 덕분에 왕이 된 명종은 나이 들어 친정을 시작하고 나서도 감히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지 못했다.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시작하고 눈을 감기까지 20년 동안 권력은 오직 그녀의 손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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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부터)태릉 숲길, 경춘선 숲길 곳곳에 놓인 미술 작품들 |
권력의 정점에서 세상을 뜬 문정왕후였기에 태릉의 모습 또한 위풍당당하다. 병풍석에 난간석은 물론 좌우로 시립한 문인석과 지금 당장이라도 호통을 칠 듯 우락부락한 모습의 무인석도 인상적이다. 능에 가는 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어서 산책을 즐길 겸 가볼 만하다.
제2의 연트럴파크 ‘공리단길’ & 서울생활사박물관
화랑대역을 지나 걷다 보면 ‘공리단길’이 나온다. 공릉동 부근에 위치해 공리단길, 공트럴파크로 불리기도 한다. ‘제2의 연트럴파크’, ‘노원의 망원’으로 꼽힐 만큼 특색 있는 카페와 서점, 문구점, 음식점 등이 모여 있어 이렇게 부른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들뜨지 않고 튀지 않은 느낌이 들어 좋다. 가게들도 떠들썩하게 자기를 내보이지 않고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열기보다는 차분함이 느껴진다. 왜 그럴까? 조금만 걷다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가게들이 모두 동네와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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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골목 정취가 곳곳에 남아 있는 경춘선숲길 |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선다. 확실히 연남동이나 홍대와는 다른 분위기다. 빵을 굽는지 실내에는 부드러운 버터 냄새가 둥둥 떠다닌다. 이곳은 문구점으로도 유명한데 한 편에는 수첩과 노트, 엽서, 펜 등이 진열되어 있다. 스티커와 스탬프 등도 많아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마니아들도 많이 찾는다.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몸을 데운 후 공리단길 산책에 나선다. 카페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곳이 서울생활사박물관이다. ‘서울에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주는 곳으로 해방 이후 서울의 모습부터 서울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전시물들이 가득하다. 옛 북부법조단지 부지에 자리한 법원과 검찰청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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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서울생활사박물관 전경 (아래) 삐삐와 컴퓨터, 무선전화기 (우)포니 택시 |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멋스러운 옛날 택시와 자가용 실물도 만나볼 수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 모델인 포니1 택시와 그보다 조금 먼저 출시된 브리사 승용차다. 이 두 차량은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모델이다.
관람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옛날 라디오와 전화기부터 ‘삐삐’와 ‘시티폰’ 등 지금은 사라진 그 시절 첨단 전자기기들도 보인다. 아기 때부터 스마트폰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에게는 골동품처럼 느껴지겠지만, 이런 전자기기 덕분에 생활이 어떻게 변했는지 함께 이야기하면 재미있을 듯하다.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왔다면 꼭 가보시기를 추천한다.
이것저것 맛있는 먹거리가 가득한 전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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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원구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인 도깨비시장 |
골목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밝고 활기차다.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가방을 메고 문구점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을 보며 든 생각이다. 동네 분위기도 말끔한 편이다. 약간은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다. 햇볕도 잘 든다. 이른 오전부터 오후까지 해가 오래도록 머문다. 노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에 기대어 햇볕을 쬐고 이야기를 나눈다. 유모차를 밀고 산보를 나온 젊은 아주머니도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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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로부터)공릉동도깨비시장 가는 길, 옛 골목 정취가 곳곳에 남아 있는 경춘선숲길, 도깨비시장 골목에는 동네책방도 있다. |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길, 마음을 내려놓게 되는 길이 있다. 지금 걷고 있는 공릉동 길이 꼭 그런 길이다. 길을 걷다 보면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들, 강요하는 것들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높은 담장 너머로 기웃이 가지를 내민 감나무. 그 아래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내려앉는다. 여기저기서 새소리가 후드득 날아와 발치로 떨어진다. 시계를 보니 화랑대역을 나온 지 세 시간 정도가 지났다. 세 시간 만에 마음의 온도가 이렇게 올라가다니. 이 겨울 꼭 걸어보시길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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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안한 분위기의 웨이스테이션 |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66호(25.02.1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