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나카, 시인이 칭송한 온천수를 만나다
니가타, 사케의 도시를 새롭게 만나다
일본은 한국인에게 친숙한 여행지다. 그렇다면 익히 들어본 것 같은 목적지에서 잠시 벗어나 낯섦을 여행해보는 것은 어떨까. 친숙한 나라에서 다소 이색적이고 낯선 장소, 특별한 주제의 여행을 맞닥뜨린다면 그 신선함은 곱절의 경험으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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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만 창구를 개조해 만든 하코다테의 한 쇼핑몰 |
항구 도시에서 낯선 풍경을 만나다
기대는 실망을 자초한다. 그러나 기대가 없는 여행이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기대가 없는, 그래서 실망도 없는 여행을 바란다면 ‘무계획’에서 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것저것 재고 따지지 말고 무작정 가보는 것. 아무런 정보도 계획도 없이 도달한 낯선 곳에서 낯선 상황을 하나둘 맞닥뜨리며 이어가는 여행, 하코다테 여행이 그랬다.
하코다테는 홋카이도 남부에 위치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도시 중 하나다. 오늘날엔 홋카이도에서 삿포로에 밀려 2인자 신세를 면치 못하는 도시지만 역사적으로 하코다테는 일본 최초의 개항 도시이자 일본 북부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1934년 일어난 심각한 대화재로 도시 건물의 반 이상이 파괴되고, 이로 인해 수천 명의 사상자 및 이주민이 발생하는 대참사가 이어졌으며 그 결과 급격한 인구감소가 나타나 이는 도시의 명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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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교회 건물 가운데 가장 특색 있는 곳은 러시아 정교회 건물이다. 1858년 러시아 영사관에 의해 설립된 일본 최초의 정교회 교회로서, 오늘날까지 하코다테의 서양식 건축물을 대표하는 데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외에 1859년 설립된 로마 카톨릭 교회, 1874년 하코다테를 방문한 미국인 선교사가 세운 개신교 교회, 같은 해 영국인 신부가 세운 성공회 교회 등도 볼 만하다. 현존하는 교회 건물은 1930~40년대 재건축 및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재건된 것이 다수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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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하코다테 만 전경 (아래) 영국인 신부가 세운 성공회 성 요한 교회 |
약 250개의 상점이 들어서 있는 시장은 하코다테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다양한 해산물과 향토 음식을 제공하는 거점 장소다. 또다른 아침 산책은 하코다테 만 지역을 걷는 것.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 낯선 공기가 전혀 차갑지 않은, 오히려 정신을 맑게 돋우는 기분을 만끽하면서 아름다운 항구의 아침 풍경을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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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최초의 러시아 정교회 건물 |
하코다테산 전망대 야경은 일본 3대 야경 중 하나로 유명한 곳이다. 한데 막상 맞닥뜨린 관광객들로 붐비는 정상에서의 야경보다 중턱에서 고요히 바라다본 풍경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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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탁 트인 해안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다치마치곶 (아래) 하코다테산 정상에서 바라다본 시내 전경 |
에도시대 시인이 칭송한 그 온천수
일본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는 온천 방문에 있다. 화산활동이 활발한 일본에는 전국에 수천 개의 크고 작은 온천이 자리한다. 온천은 지하수가 지열에 의해 데워져 지표로 나온 것으로 화산 주변은 지열이 매우 높기 때문에 그에 따른 영향으로 온천 마을이 발달해 있다. 일본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온센(温泉)’이라 쓰여진 간판을 쉬이 찾아볼 수 있는데, 아름다운 협곡을 따라 자리잡은 온센을 발견하면 온천욕 이상의 경험을 기대해볼 수 있다. 일본 이시카와현 남서부에 위치한 가가 지역에서 그 값진 경험을 만끽했다.
하쿠산 산기슭에 자리잡은 가가 지역은 예로부터 온천 천국으로 일컬어졌다. 많은 수의 사원과 온천이 자리해 있어 일본 현지인들 사이에서 ‘관광 도시’로 인식되는 곳이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다. 그중 산악 지역에 카쿠센 계곡을 따라 들어서 있는 야마나카(Yamanaka) 온천 마을은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가가 지역을 구성하는 4대 온천 마을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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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카쿠센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숲속 하이킹 코스 (우) 하쿠산 산기슭에 자리잡은 야마나카 온천 마을 |
나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온천 마을을 방문했는데 차가운 공기가 온천수에 대한 열망을 더욱 자극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온천에 앞서 먼저 협곡을 따라 산책을 즐겼다. 경치 좋은 카쿠센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숲속 하이킹 코스는 야마나카 마을 여행의 백미로 꼽을 만하다. 이곳 협곡에는 여러 개의 다리가 마을의 주택가와 산책로를 이어주고 있다. 독특한 철교로 디자인되어 마치 숲속 풍경과 어우러져 동화 속 느낌을 자아낸다. 다리 위에서 바라다보는 무성한 나무숲과 주택가 풍경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해 평화로운 휴식처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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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다이죠지 강변 산책로에서 강을 바라봤다. (아래) 대중온천탕 ‘기쿠노유’ 전경 |
광물 성분이 풍부해 치유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 온천수에 몸을 맡긴 채 통창으로 구름에 뒤덮인 바깥 풍경에 한동안 넋을 잃었다. 오감이 일제히 함성을 일으키듯 온천수에 반응하는 짜릿한 쾌감이 그 시간을 채웠다.
술맛 부르는 곳, 니가타
최고의 쌀과 물이 빚어내는 사케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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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가타 강변 풍경 |
특히 에도시대부터 곡창지대를 필두로 유명 술 양조장이 발전하기 시작해 오늘날 니가타 전역에는 약 90개의 사케 양조장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이곳은 일본 전역에서 가장 많은 사케 양조장을 보유한 도시로서, 약 500여 종에 달하는 많은 종류의 사케가 생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케의 도시’답게 니가타에서는 매년 3월이면 도시 전역에서 박람회가 열리는데, 사케를 기반으로 다양한 주제의 축제 및 공연, 강의, 워크숍 등이 대규모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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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마요 츠카사 양조장의 내부 시설 |
이마요 츠카사 양조장은 1767년 여관 겸 사케 가게로 문을 열었다. 당시 이곳 지역 사케 양조업자들 사이에서 사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사케에 물을 많이 섞기로 악명 높았는데, 워낙 물 양이 많다 보니 물고기가 살 수 있을 정도로 희석되었다는 의미로 ‘금붕어 사케’라는 별명이 우스갯소리로 나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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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부터)이마요 츠카사 양조장 입구 전경, 사케 제조과정을 엿볼 수 있는 양조장 투어, 사케 제조에 쓰이는 니가타 쌀 |
쿠비키 자전거도로
옛 철도 트레일을 따라 즐기는 라이딩
다소 이색적인 일본 여행을 원한다면 자전거 두 바퀴에 몸을 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서울과 부산을 잇는 몇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장거리 구간의 자전거도로는 극히 드문 편이다. 대다수의 자전거도로가 50~100킬로미터 안팎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그중 쿠비키 자전거도로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토이가와와 조에쓰 사이 동해 연안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며 총 32킬로미터로 뻗어 있는 이 자전거도로는 일본 특유의 옛 정취를 품고 있는 어촌과 산간 농장을 통과하는 풍경이 자전거 페달을 밟게 하는 매력적인 요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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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쪽 좌로부터 시계 반대방향)동해의 탁 트인 풍경, 어촌 마을 풍경, 쿠비키 자전거도로 |
전체 구간을 통과하려면 약 4~5시간 정도 소요된다. 당일치기 여행으로 이상적인 코스다. 이토이가와나 조에쓰를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하루 정도 라이딩에 시간을 내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을 쌓는 선택이 될 것이다. 라이딩을 하려면 일단 자전거가 필수적이다. 편리한 라이딩을 위해 자전거 대여점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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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개의 좁다란 터널을 통과하는 자전거길 |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77호(25.04.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