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진 한 기업의 전문 경영인으로 들어가 단숨에 적자였던 매출을 흑자로 돌린 CEO가 있습니다. 바로 ‘판도라TV’의 최형우 대표가 그 주인공입니다. 150명이었던 직원이 55명으로 줄어들 만큼 위기에 처해있던 ‘판도라TV’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직원들과 기술이라고 말하는 최형우 대표. 그의 이야기를 MBN ‘정완진의 The CEO’에서 직접 만나 들어봤습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아 래-
Q.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신다면?
2남 3녀 중 장남이어서 그런지 동생들을 돌보면서 자연스럽게 리더십이 생겼습니다. 친구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독서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책을 통해 지식을 쌓고 생각하고 또 그런 것을 친구들과 이야기 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책 읽는 것이 좋아서인지 대학교도 ‘국어 교육과’에 들어가게 되었죠.
Q. 사회생활의 시작은 어떠셨나요?
많은 분들이 ‘국어 교육과’를 나왔다고 하면 선생님이 꿈이었냐고 물어보시는데 저는 교단에 서는 것 대신 ‘광고 대행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좀 더 치열하게 부딪히며 사회생활을 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글 쓰는 것이 좋아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 입사를 했지만 더 창의적이고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어 ‘영업’을 선택했죠. 그런데 힘차게 영업을 시작할 것이라는 제 생각과는 달리 처음 맡겨진 업무는 복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선배들의 기획안 수천 장을 밤새 복사하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그 안의 내용들을 보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국어 교육과’를 전공해 광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저에게는 좋은 참고서 같았죠. 그렇게 광고에 대한 업무를 서서히 익혀갔습니다.
Q. 일을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처음 광고주에게 광고를 맡게 된 후 광고 시안을 만드는 일이 주어졌는데 생각보다 시안을 만드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광고 시안을 만들까 고민하던 중에 그들의 겉만 보는 것이 아닌 더 깊숙이, 속을 들여다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곧장 광고할 물건이 생산되고 있는 생산 공장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한 달 동안이나 공장에서 물건을 같이 생산하고 여러 일들을 도왔습니다. 그렇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알게 되니 좋은 광고 시안도 나오게 되었고 광고주뿐 만 아니라 저희 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큰 기업의 광고도 제가 거의 맡아서 하게 되었고 승진도 빠르게 할 수 있었습니다.
Q. 인터넷 산업 쪽으로 뛰어드시게 된 계기는?
광고 대행사에 함께 다니시던 선배가 ‘야후코리아’로 이직을 하시면서 저에게도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많이 발달된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엄청난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고 잘나가던 AE 일을 접고 인터넷 산업 쪽으로 뛰어들게 됐습니다. 광고 대행사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야후코리아’의 광고 세일즈 부서로 들어갔습니다.
Q. 이직 후,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먼저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당시에는 생소했던 ‘인터넷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람들의 인식에 인터넷 광고가, 아니 인터넷의 개념조차 잘 자리 잡혀 있지 않았을 때라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바로가기와 인터넷 홈페이지 마케팅 등의 서비스를 제공해주었고 점점 광고를 유치하겠다는 곳은 늘어났습니다. 특히 금융권에서는 인터넷 광고와 함께 대출 서비스를 개발해 제공함으로써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또 많은 수익을 내지 못했던 ‘검색엔진’을 ‘스폰서 링크’를 개발해 내면서 검색으로도 돈을 버는 서비스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개발에 몰두하고 광고하면서 ‘야후코리아’의 매출은 2배로 뛰어올랐습니다.
Q. 또 다른 변화가 있으셨다면?
‘야후코리아’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저의 경험과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또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의적인 일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던 것이죠. 그러던 중 마침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고 ‘이마켓 본부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새로 시작하는 단계의 포털 사이트로 제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아 보였습니다. 당시 메일과 카페 등의 서비스를 하고 있었는데 그 외에도 더 많은 서비스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좀 더 폭넓은 인터넷 사용자를 끌어 모으기 위해 ‘아고라’서비스 등을 개발해 성공적으로 ‘다음커뮤니케이션’을 ‘미디어다음’으로 탈바꿈 시켰습니다. 그렇게 ‘온라인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많은 노하우를 쌓게 되었고 덕분에 ‘한국 이마케팅 협회’의 협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Q. ‘판도라TV’를 맡게 되신 계기는?
‘다음’을 나온 뒤 저만의 회사를 경영하고 싶어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었습니다. 온라인 업체를 컨설팅 해주는 회사였는데 그 때 ‘판도라TV’의 컨설팅을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판도라TV’는 직원이 150명에서 55명으로 줄어드는 등 상당히 하향세를 타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문제를 진단하면서 투자와 새로운 수익 모델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판도라TV‘ 측에 이러한 문제점을 말하며 컨설팅을 해주던 중에 아예 전문 경영인으로 ’판도라TV‘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 것입니다. 보통 컨설팅을 해주게 되면 그 회사에 어느 정도 애정과 마음이 쏠리게 되어있고 충분한 가능성도 보았기에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Q. ‘판도라TV’의 대표이사 취임 후, 어떤 일들을 하게 되셨나요?
앞서 말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시급했죠.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바로 투자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투자를 받기 위해 ‘일본 판도라TV’에 광고 유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일본은 광고 유치 비용이 우리나라보다 비쌌고 광고를 유치한다면 투자 금이 마련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판도라TV’의 업무를 보는 직원을 충원하고 함께 일본으로 날아가 치열하게 투자 금을 받기 위한 노력을 했고 그 결과 투자 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투자 금이 마련되니 좋은 인력을 더 충원할 수 있었고 새로운 수익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개발 비용도 생겨 수익 모델 개발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취임하기 전인 2007년에서 ‘판도라TV’에서 인수한 ‘KM Player’를 보게 되었습니다. 'KM Player'는 전 세계 160개국에서 사용할 만큼 널리 이용되고 있는 동영상 플레이어였는데 광고를 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특성상 수익 모델로는 활약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영상 시작 전과 후에 광고를 넣는 방식이 아닌 'KM Player'를 다운 받을 때 툴 바를 함께 설치하게 하고 그 툴 바에 광고를 노출 시켜 수익이 생길 수도록 개발했습니다. 덕분에 'KM Player'는 지금 '판도라TV‘에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수익 모델이 되었습니다.
Q. 힘든 일은 없으셨나요?
사실 직원들의 사기도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고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죠.(웃음) 광고 대행사를 거쳐 수많은 일을 겪으면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되었지만 사기가 꺾인 직원들의 웃음을 다시 되찾아 주는 일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충분히 회사의 가능성을 인지시키고 다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 회사도 더 쾌적한 곳으로 옮기게 되었고 직원들의 책상 사이에 벽을 없애 충분히 의사소통을 하며 일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저 또한 대표이사 실이 아닌 직원들의 자리 가까운 곳에 자리를 만들고 항상 직원들이 저와 소통할 수 있도
Q.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스마트 시대에 맞춰 새로운 수익 모델들을 많이 개발했습니다. 이런 사업들이 ‘판도라TV’를 다시 재도약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좋은 기반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매출도 2012년엔 125억 원으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이런 기세라면 2015년에는 상장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