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를 위해 신문 배달에 시장판 노점상, 그리고 막노동판까지 안 해본 일이 없던 가난한 소년. 이 소년의 인생은 훗날 허브를 만나게 되면서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허브제품으로 100억 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주)허브패밀리’의 이용우 대표의 이야기입니다. 한쪽 손에는 다섯 살배기 아들 손을 잡고, 또 한쪽 손에는 허브 보따리를 든 채 아내와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던 그가 허브의 본거지인 유럽시장을 흔드는 회사의 CEO가 되기까지 어떠한 노력이 있었는지 MBN ‘정완진의 최고다(최고 경영자의 고귀한 다섯 가지 비밀)’ 제작진이 직접 들어봤습니다.
Q.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부터 늘 하루빨리 어머니의 짐을 덜어드리려면 돈을 벌어야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형 인형공장에 들어가서 월 2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게 되었는데 문득 평생 생산직 사원으로 머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공장에 있는 생산직 직원 그 누구보다 성실히 일해 인형 공장의 관리감독도 맡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에 대한 감도 익히고 자신감도 얻은 후 ‘내가 직접해보자!’ 하는 생각에 창업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자금이 없어 고민하고 있던 차에 어머니께서 흔쾌히 집 담보로 5000만원을 대출해주셨죠. 그 값지고 소중한 돈으로 저는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Q.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허브... 허브 사업에 발을 들이시게 된 계기는?
집 대출까지 받아서 차린 인형공장이었지만 수금이 제대로 되지 않고 직원들도 단체로 이직하는 등 많은 문제가 생겼어요. 결국 사업 2년만에 처절하게 실패를 맛보았죠. 그 후 집집마다 방문해서 월부책 판매 영업도 해보고, 야심차게 새송이 버섯 재배도 해보았지만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실의에 잠겨있던 즈음, 취미 삼아 허브를 기르며 농장을 운영하던 장인어른으로부터 허브 판매를 제안 받게 되었죠. 당시 허브 시장은 미미한 실정이었지만 조금씩 시장이 생성될 기미가 제 눈에 보이더군요. 곧장 아내와 대형마트를 돌며 직접 영업에 나섰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직접 허브를 응용해서 만든 제품에 대한 욕심이 생겨났고 2000년도에 아내와 함께 ‘(주)허브패밀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허브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처음해보는 허브사업,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무엇?
가장 먼저 도매시장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해 어린 아들을 업고 중고 봉고차 한 대로 전국을 돌며 도매인들을 만났어요. 일일이 발품 영업을 하며 영업망을 뚫는 것은 사교적인 아내가 주로 전담했는데, 허브가 뭔지도 모르는 도매인들에게 허브의 효능과 특징을 일일이 설명하느라 아내가 애를 많이 썼죠. 묵묵히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허브를 응용한 제품을 개발하는 데에 주력했습니다. 그러다가 망사주머니에 허브와 원두커피 알갱이를 넣은 방향제를 개발하게 되었는데 순식간에 주문이 빗발치더군요. 은은히 퍼지는 커피향 덕분에 차량 방향제와 옷장 방향제로 아주 인기 만점이었어요. 처음 맛본 작은 성공이었죠. 이게 내 길이구나 싶었어요.
Q. 창업 후, 힘든 일은 없으셨나요?
커피 방향제가 대히트를 치자 이것을 교묘하게 베낀 모방제품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더군요. 모방제품들은 싸구려 향으로 만들어져 저렴한 가격으로 나왔죠. 언뜻 보기엔 비슷해보였지만 질적으로 상당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마진을 많이 남기기 위해 싸구려 향으로 만들어진 모방제품들은 일주일도 못가서 향이 사라지곤 했죠. 그렇지만 저렴한 가격이라는 무기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어요. 가격경쟁력에서 살아남으려면 단가를 낮추라는 권유도 받았지만 싼 가격에 질 낮은 제품으로 소비자들을 속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원리 원칙을 지켜 기본을 충실히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경영 철학이었으니까요.
Q.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게 되었나요?
저는 커피 방향제 대신 새 시장을 개척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허브용품으로 정평이 나있는 유럽으로부터 허브 에센스 오일과 허브 캔들, 허브 바디용품들을 수입해 국내 시장에 되파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일본 국제 기프트쇼에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박람회를 견학하는 내내 다양하고 기발한 제품들을 보며 각종 샘플과 카탈로그를 모았어요. 정말 공부가 많이 되었죠. 그리고 귀국 즉시 아이디어 제품 개발에 매진하여 고급 허브 에센스 오일을 첨가한 바디 용품과 향초, 방향제를 순차적으로 개발했어요. 뿐만 아니라 공장을 설립해 허브용품 생산에 적합한 설비도 개발했죠. 이렇게 직접 개발하고 생산한 제품들을 각종 매장과 대형마트 등에 팔았습니다. 브랜드마다 컨셉에 맞게 차별화시켜서 제품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신상품 개발에도 게을리하지 않았죠. 그랬더니 생산 가짓수만 1000여개가 넘을 정도로 다양해졌습니다. 처음엔 국산 제품이라는 이유로 마다했던 소비자들도 다양한 가짓수와 고급 품질에 반해 단골이 되었죠.
Q. 위기 극복 후 이어진 승승장구, 그 비결은?
단골이 늘고 입소문이 퍼지자 여러 업체의 바이어들도 저희 사무실에 진을 치기 시작했죠. 아내가 바이어들과 상담하며 영업을 해내는 동안 저는 계속 허브용품 개발에 매진하면서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그 결과 천연 로즈마리가 함유된 탈모관리 샴푸와 스틱 디퓨저 등을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개발한 허브 제품들에 ‘수험생용’, ‘용기내기용’ 등의 스토리를 심었어요. 그러자 제품들은 내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연신 대박 행진이었습니다. 공장 하나로는 생산이 벅찰 정도였죠. 그래서 공장을 이전해 3,000평 부지의 대형 공장을 짓고 제품개발과 생산에 더욱더 박차를 가했어요. 또한 특허 등록이라는 확실한 진입장벽을 만들어 저희 회사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죠. 신뢰를 기반으로 거래처가 100곳으로 확대되었고 사업은 나날이 승승장구 했습니다.
Q. 아직도 허브 제품 연구와 개발에 몰두하고 계신다고?
자체 브랜드를 출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로마 전문 브랜드 ‘아로니카(ARONICA)를 런칭하였고 이어서 ’루벤‘이라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도 개발하여 매장을 오픈하였습니다. 또한 2013년에는 프랑크푸르트 암비엔떼 쇼에 참가해 세계적인 바이어들의 관심과 호응을 집중적으로 받는 성과를 거두었죠. 이 여세를 몰아 겹겹이 다른 향이 나는 ’퍽 캔들‘ 등 상품라인을 추가로 개발하여 연 매출 100억 원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Q. 앞으로 꿈이나 목표가 있으시다면?
외국 바이어들이 저희 제품을 접할 때마다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 한국 제품이 맞느냐는 것입니다. 극찬이라는 것을 알지만 한편으로는 국내 허브 시장에 대한 시선이 달갑지 않다는 것을 느껴 오기가 나기도 합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