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즐겨먹는 돼지고기. 이 돼지고기를 신선하고, 또 안전하게 먹기 위해서는 질 좋은 우리 돼지를 얼마큼 잘 생산하고 키워 내느냐도 참 중요합니다. 이렇게 우리 식탁에 질 좋은 돼지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발로 뛰는 CEO가 있습니다. 바로 (주)금돈의 장성훈 대표가 그 주인공입니다. 과거, 아픈 상처로 인해 우연히 축산업계에 발을 들였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축산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그. 그의 사연 있는 성공 이야기를 MBN ‘정완진의 최고다(최고 경영자의 고귀한 다섯 가지 비밀)’ 제작진이 직접 들어봤습니다.
Q. 축산업계에 발을 딛게 된 계기는?
사실 저는 어린 시절, 라디오 등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을 취미생활로 할 정도로 기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공대에 진학해 제 꿈을 펼치고 싶었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주워 분해를 하려고 하는 순간 ‘펑!’하고 터지더라고요. 수류탄이었어요. 이 일로 왼쪽 손가락에 문제가 생겨 더 이상 기계를 만지거나 하는 일은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공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던 중 어머니가 앞으로 먹고 살려면 ‘축산업’을 배워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고 저는 ‘축산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축산업계에 첫 발을 딛게 된 계기였습니다.
Q. 축산고등학교 졸업 후, 어떤 일을 처음으로 하셨나요?
일자리를 찾아다니다가 고향인 강원도에서 경기도 안성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경기도 안성에 있는 한 육종회사에 취직하게 되었고 거기서 종돈 영업일을 했습니다. 당시 영업은 처음이었지만 영업을 잘 할 수 있는 저만의 방법을 개발했죠. 그 방법은 각 돼지 농장에서 원하는 돼지의 체형 등을 잘 메모해 두었다가 다음에 영업을 갔을 때 원하는 돼지를 잘 제공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거래처 농장에서도 원하는 돼지를 받아 좋아하고 우리 회사 입장에서는 돼지를 더 많이 팔 수 있으니 양쪽에게 모두다 이득이었죠. 회사 매출도 물론 많이 상승을 했고요. 덕분에 영업부장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Q. 이 사업을 하면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회사에서 그렇게 경력을 쌓은 뒤 ‘금보농장’이라는 저만의 농장을 차렸습니다. 처음 농장을 차렸을 땐 비육돈 농장을 운영했었는데요. 건강한 돼지를 받아와서 잘 기른 뒤 육가공 공장 등으로 납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도 농장의 직원들을 관리하고 영업을 가고, 또 사료 등을 보러 다니는 것은 직접 했습니다. 그 동안 키워온 영업력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IMF가 터졌습니다. ‘첫 시작부터 망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버티고 버티다가 사료가 떨어져 외상으로 사료를 사러 갔는데 그곳 사정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사료 업체에서도 돼지를 기르고 있었는데 IMF여파로 돼지가 팔리지 않아 난감해 했습니다. 저는 왠지 그 돼지들을 그냥 두고 돌아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 돼지들을 기르고 있으면 분명 기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료와 함께 돼지들도 외상으로 사와 농장에서 같이 4~5개월 정도를 길렀는데 거짓말처럼 돼지 값이 안정되면서 많은 곳에서 다시 돼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사료 업체에서 외상으로 산 돼지들이 많은 도움이 됐죠. 그렇게 돼지가 불티나게 나가자 외상값도 모두 값을 수 있게 되었고 사업도 어느 덧 안정궤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Q. 좋은 품종의 돼지를 직접 개량, 판매하신 건 언제부터인가요?
금보농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금보육종’이라는 육종회사를 차렸습니다. 제가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검정 요원 자격증’을 취득한 상태에서 돼지 검정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한국형 종돈’ 자격에 맞는 돼지를 찾아 검정한 후 정액을 채취, 그 정액을 농장에 파는 영업까지 직접 했습니다. 거의 전국의 농장을 돌아다니며 영업을 했죠. 확실한 검정을 통해 채취한 정액인 지라 매출 또한 많이 올랐고 금보농장에 이어 계속해서 승승장구 할 수 있었습니다.
Q. 농장을 운영하시는 만큼 뜻하지 않은 사고나 위기도 있으셨다고?
2010년 말에 터진 구제역이 가장 큰 위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동안 키워온 25000두의 돼지를 모두 땅에 묻어야 했습니다. 당시 육종회사뿐 만 아니라 육가공도 하며 포장육 등을 생산, 강원도 지역의 축협과 농협에 납품해 판매를 하고 있기도 했었는데그 모든 것이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돼지를 가지고 하고 있는 일을 한 데 모아 ‘돼지 문화원’이라는 관광지를 개발하려고 했던 것도 무산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은, 아니 다 잃은 상태였죠.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무너질 수는 없었습니다. 이 시기도 IMF처럼 지나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구제역도 잠잠해졌고 저는 원래 추진하던 모든 사업들을 다시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Q. 그 성과는 어땠나요?
‘돼지 문화원’을 무사히 개관할 수 있었습니다. 돼지 달리기 이벤트나 펜션, PC방 등의 편의시설은 물론 신선한 돼지 가공 식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판매점까지 안에 마련을 했습니다. 또한 돼지뿐 만 아니라 조랑말 등 다른 동물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덕분에 3~4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에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질 좋은 돼지를 생산하기 위한 육종은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는 상황이고요. 구제역 이후 많이 힘들었지만 다시금 회복을 해 나가는 상황입니다. 저도 물론 기쁘게 일을 하는 상황이고요. 현재는 인터넷을 활용해 소시지나 포장육 등을 판매하고 있기도 합니다.
Q. 앞으로 꿈이나 목표가 있으시다면?
돼지 문화원에서 더 나아가 체험 마을을 만들고 싶습니다. 좋은 돼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