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와 KB국민카드의 자동차 카드복합할부금융(이하 복합할부) 가맹점 수수료율 협상이 업계 간 기선 싸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이번 협상 결과에 따라 현대차와 가맹점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BC카드, 신한카드, 삼성카드, 롯데카드 등 다른 카드사와의 협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까닭이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복합할부 가맹점 수수료율 수준을 놓고 이견을 보이던 현대차와 국민카드의 협상이 파국으로 치닫다 가까스로 협상의 불씨는 살렸다.
양측 간 입장차가 팽팽하게 맞서면서 협상이 벼랑 끝으로 가는 듯 했으나 '소비자를 볼모로 잡고 협상을 한다'는 비난이 일자, 협상을 위해 오는 10일까지 가맹점 계약을 한시적으로 늘려 놓은 상태다.
일단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양쪽의 입장차가 커 협상의 극적 타결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앞서 현대차는 최근 가맹점 계약 만료를 앞둔 국민카드에 현행 1.85%인 복합할부 수수료율을 0.7%로 낮춰달라고 요구했고, 국민카드는 "1.75% 이하로 낮추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소비자가 차를 살 때 통상 캐피탈사 할부금융을 이용했다. 캐피탈사가 소비자 대신 자동차 회사에 대금을 먼저 내주면 소비자가 캐피탈사에 매달 할부 원금과 이자를 내는 구조다.
그러다 이 시장에 카드사들이 뛰어들면서 고객이 캐피탈사와 할부 계약을 맺을 때 중간에 신용카드 결제를 끼워 넣은 상품이 등장했다. 바로 복합할부다. 2010년 처음 선보인 이 상품은 취급액이 8654억원에서 지난해 4조5906억원으로 급증했다.
복합할부는 소비자가 자동차를 살 때 캐피탈사와 할부약정을 맺고 캐피탈사가 권유하는 신용카드로 할부원금을 결제하면, 다음날 캐피탈사가 소비자 대신 카드사에 할부원금을 갚아주고 소비자는 캐피탈사에 할부로 갚는 상품이다.
카드사들은 이 과정에서 자동차 회사로부터 받은 가맹점수수료(1.9%) 중 일부를 고객에게 캐시백(0.2%)으로 돌려주고 나머지는 카드사(0.33%), 캐피탈사(0.37%), 자동차 영업사원(1.0%)이 나눠가지게 된다.
예컨대 소비자가 2000만원짜리 차량을 복합할부로 구매 시 카드사는 자동차 회사로부터 38만원의 수수료를 받고, 카드사는 받은 수수료 중 캐피탈사(자동차 영업사원 20만원 포함)에 수수료로 28만원을 나눠준다. 나머지 10만원은 카드사 몫으로 떨어진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러한 결제 과정에서 통상 외상거래가 이뤄지는 신용카드의 특성상 신용공여기간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은행처럼 영업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수신기능이 없는 카드사 입장에서는 신용공여기간을 단축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자금조달비용이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복합할부의 경우 거래의 특성상 신용공여기간이 2일에 불과하다. 고객이 캐피탈사와 약정한 할부원금을 카드로 결제하면 다음날 캐피탈사가 고객 대신 카드결제 대금을 대신 입금해 주기 때문이다. 이 까닭에 자금조달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며, 대손충당금 적립 등 리스크 관리비용과 공동 마케팅비용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 탓에 카드사는 이익은 없지만 자동차와 같은 건당 결제 금액(평균 2000만원)이 큰 거래를 하면서 신용판매실적과 시장점유율(MS)을 올리는 동시에 자금조달비용, 리스크 등을 크게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카드사들이 이 시장에서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해 가맹점 수수료율 협상에서 벼랑 끝 전략도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 車 업계 대표들 "생존에 위협"
카드사들이 수취하는 신용공여 2일간의 가맹점 수수료율 1.9%를 연 단위로 따지면 수백% 수준에 달한다. 2010년 카드사들이 복합할부금융 상품을 본격적으로 취급하기 시작하면서 지난해까지 4년간 자동차 회사가 카드사에 지불한 수수료는 1872억원. 2010년 이전만 해도 지출하지 않아도 됐을 수수료를 내야만 하고 해가 갈수록 그 규모가 커지자 자동차 회사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동차 판매 회사들은 복합할부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거래 과정에 카드사들이 개입함에 따라 주지 않아도 되는 가맹점 수수료가 발생한데다, 수수료율을 자동차 가격에 전가해 손해를 상쇄하기에는 여론의 눈치와 함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급기야 지난 7월 자동차 회사들은 이익 단체인 자동차산업협회를 통해 산업통상자원부에 복합할부 상품의 폐지를 건의했다. 이에 앞서 한 달 전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복합할부 공청회에서 삼화모터스의 지동현 사장은 "급작스런 복합할부 수수료 증가로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면서 카드사에 수수료 인하를 요청했지만 회신조차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지 사장은 국민카드 설립기획단의 부단장을 맡아 카드사 설립을 주도했으며, 국민카드의 경영관리와 기획본부장 부사장 등을 지냈다. 누구보다 카드사의 생리를 잘 아는 '카드맨'이다. 수년간 카드사 경영을 담당했던 임원의 발언임을 감안하면 자동차 회사들이 느끼는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자동차 업계는 상품 폐지가 어렵다면 수수료라도 합리적인 수준으로 낮추자고 요청하고 있다.
지난달 15일에는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외국인투자기업 규제개선 간담회'에서 BMW코리아 김효준 사장, RCI코리아 피에르 보피스 사장 등 외국자동차기업 사장들은 최근 편법논란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복합할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RCI코리아 피에르 보피스 사장은 복합할부를 폐지하거나 거래구조에 맞는 수준으로 카드가맹점수수료를 인하해 달라고 주문했다.
정홍원 총리는 이에 대해 "복합할부 제도 운영 여부에 대해 근본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공식 답변하면서 복합할부의 문제점에 대해 공감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가 차를 사는데 카드사와 캐피탈사, 자동차 영업사원이 각자 자기 이익을 챙기는 이상한 구조의 상품으로, 할부거래를 이용하는 다른 제품들에도 이런 방식이 적용된다면 사회적 비용을 높이는 문제로 커질 수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KB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는 여전법 위반"
현대차는 지난 8월말 논란이 된 복합할부 존폐 여부에 금감원이 유지 결정을 내린 후 가맹점계약 만기가 도래하는 국민카드에 수차례 협상 요청하였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국민카드는 복합할부 수수료 인하가 여전법 위반이라 주장하며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국민카드 측은 신용공여기간이 거의 없는 체크카드의 평균 수수료율이 1.5%인데 그 이하로 해달라는 현대차의 주장은 여전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로운 가맹점 수수료 체계에서 적격비용을 산출한 것인데 가맹점 수수료 체계가 다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현대차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향후 유사한 가맹점 수수료 협상에서 여전법 위반 논란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현대차는 부당하게 수수료 인하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 신용카드 결제와 달리 수수료 인하 여지가 있는 복합할부 상품에 한해 수수료 인하를 요청한 것이라, 여전법 위반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카드사 복합할부 수수료 담합(?)
동일한 복합할부금융 수수료 수준을 근거로 카드사들의 수수료 담합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KB카드(수수료율 1.85%)만 제외하고 대부분의 카드사들은 1.9%의 복합할부 가맹점수수료를 부과하고 있고, 카드사들이 수취하는 수준도 거의 0.53∼0.54% 정도로 동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2012년 신가맹점수수료체계를 금융당국이 주도하면서 업종별 수수료로 부과하다 보니 동일한 수수료가 나올 수밖에 없지
자동차 업계에서는 금감원 후광아래 카드사들이 일사분란하게 현대차를 압박하고 있다는 얘기들도 흘러나오고 있다. 금감원이 업계 간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데도 여전법 위반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채 협상당사자인 카드사만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매경닷컴 전종헌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