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용지를 행복주택용지로 전환하다니요. 이게 말이나 됩니까. 시루떡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워도 새 학교가 조성될 거란 기대로 이제껏 기다렸는데…”
최근 경기도 용인 기흥구 일대가 시끌벅적하다. 구성지구 내 초등학교 조성 예정 부지가 얼마 전 정부가 저소득층 주거안정을 위해 시행 중인 행복주택 부지로 용도 변경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변경과정에서 주민의 의견수렴은 물론 안내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들은 인근 물푸레 마을의 초등학교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학교를 예정대로 지어달라며 피켓을 들고 거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행복주택은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노인계층 등을 위해 직장과 학교가 가까운 곳이나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곳에 지은 임대료가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으로, 입주기간은 젊은 층의 경우 최대 6년, 노인·취약계층·산업단지는 20년이다.
↑ [지난 9일 용인교육지원청 앞에 물푸레마을 300여명의 학부모들이 학교부지 용도변경 반대피켓을 들고 모인 모습] |
“국토부 담당설계관도 만났고, 시장도 찾아갔다.”
지난 9일에는 청덕초 학교설립추진위원회 등 학부모 10명이 시교육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 학교가 증설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이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도 들었다.
인근 초등학교에 자녀를 보낸다는 한 학부모는 “해당 부지에 초등학교가 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이곳으로 이사왔다”며 “이미 교육분담금도 냈는데 다른 지역으로 학교를 보내야 하는 거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지는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 562 일대 1만2천37.4㎡ 규모의 터다. 해당 부지는 애초 초등학교 설립이 확정돼 있었으나, 교육부가 향후 늘어날 학급이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지난 2009년 LH에 부지를 반납해 현재 나대지 상태다.
입주 10년이 되어가는 이 지구에는 그 흔한 주민센터나 스포츠센터, 우체국조차 없다. 때문에 주민들은 해당 부지에 학교를 지을 수 없다면 주민편의시설이라도 지어달라고 요구해왔던 곳이다. 하지만 용인시 측은 용도변경이 불가하다며 거절하기 일쑤였다.
교육부의 예상도 빗나갔다. 청덕초등학교는 2년 전까지만 해도 돌봄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고 입소문났던 학교였지만, 지금은 교실 수가 부족해 특별활동실을 리모델링해서 교실로 사용 중이다.
급식실은 상태가 더 심각하다. 이곳은 기존 두 번에 나눠 저학년과 고학년이 번갈아 가며 점심을 먹었다. 지금은 학생수 증가로 적게는 두 번 많게는 세 번을 돌려야 아이들 전원이 밥을 먹을 수 있다.
게다가 급식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오전수업을 쉬는 시간 없이 진행하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한 주민은 “아이가 오후만 되면 배가 고프다고 성화를 해 알아보니 급식실 운영이 이런식이었다”며 “운동장도 좁아 체육시간이 겹치는 날은 교실에서 피구를 해야 하는 웃지 못할 경우도 다반사”라며 성토했다.
청덕초 학교설립추진위원회와 학부모들은 일단 9일 면담을 통해 "초등학교 부지 확보를 국토부에 정식 요청하겠다"는 교육청 담당자의 약속을 얻어냈다.
오는 12일에는 용인시청에서 4자 면담(국토부, 교육청, 용인시청, 한국토지공사)이 있을 예정이다. 일단 교육청 담당자의 긍정적인 답변을 들은 학부모들은 10일 예정했던 아이들의 등교거부를 일단 잠정 보류했다.
지난 9일 용인교육지원청 앞에 피켓을 들고 모였던 물푸레마을 300여명의 엄마들
물푸레마을 엄마들의 “행복주택만 행복할 게 아니라 아이들이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달라”는 바람으로 시작된 이 작은 전쟁은 어떻게 끝이 날지. 그 어느때보다 교육청의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매경닷컴 이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