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500만원에서 200억으로... 과거 어떻게 사업을 성장시켰나요?
온 힘을 다해 일구었던 내 몸과 다름없던 회사였었죠. 28살 단 돈 500만원을 들고 젊은 패기로 창업을 시작했었습니다. 제 첫 창업이었네요. 알림시계의 부품인 부저(소형 스피커)를 아이템으로 선택했죠. 작은 시계회사를 다니며 부저가 대부분 수입해 사용한다는 것을 보고 제가 직접 납품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쉽지 않았습니다. 제품 품질에 문제로 반품 받는 일이 태반이었죠. 빚도 생기고 재고 물량도 쌓였습니다. 제품력을 높이며 삐삐를 생산하는데 저희 제품을 납품할 수 있게 되며 숨통이 조금 트였을 때였습니다. 모토롤라에 저희 제품을 납품할 꿈같은 기회가 찾아왔죠.
Q. 어떻게 당시 세계 핸드폰 시장을 주름잡던 모토롤라에 납품할 수 있었나요?
모토롤라는 당시만 하더라도 최고의 무선 제품 회사였었죠. 주변 지인의 주선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삐삐에 제품을 납품하며 제품력이 인증되었기 때문이었죠. 우리 회사가 조금 더 도약할 수 있는 순간 작은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에이전트의 신용도가 문제였죠. 해외에 제품을 수출하는데 주변에서는 신중하게 결정하라는 의견이 많이 있었습니다. 제품을 보내면 최소 1달에서 2달 뒤 금액을 정산 받을 수 있는데 그 금액을 받지 못할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죠. 삼일 밤낮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어떻게 리스크가 없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수출에 뛰어들었죠. 저는 샘플을 미국으로 보냈고 에이전트를 통해 승인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모토롤라에 제품을 납품하기 위해 밤낮으로 공장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회사는 신바람 그 자체였죠. 미국으로 가는 화물선에 우리 제품을 실었을 때 그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위험을 감수했던 선택이 없었다면 그 기쁨도 없었겠죠.
Q. 승승장구하던 회사가 어떻게 위기에 빠졌나요?
IMF의 위기에도 저희는 해외로 제품을 수출했기 때문에 더 많은 매출을 올렸습니다. 위기란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졌죠. 노키아사에서도 오더가 들어오며 2천만불 수출이라는 성공신화를 이뤘습니다. 제가 마이더스의 손이라도 된 것 같았죠. 그러다 대기업처럼 사업을 다각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성인식장치 등 다양한 사업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죠. 제가 전혀 모르던 외식사업에도 뛰어들었습니다. 설렁탕을 만들기 위해 큰 공장까지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 설렁탕도 광우병 파동을 겪으며 접을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투자만 250억을 넘어가며 회사가 휘청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업에 엄청난 손해가 발생하며 경영난에 봉착하게 된 것입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20년을 일군 회사가 매각 될 위기까지 치달을 때 그제야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겨우 남은 20여명의 직원들과 회생신청을 신청하였지만 2009년 결국 파산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기분은 참담하기 이로 말할 수 없었죠.
Q. 절망감이 컸을 텐데... 어떻게 다시 재기를 다짐했나요?
20년 동안 정신없이 쌓아왔던 공든 탑이 신기루처럼 사라졌죠.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반듯했던 사옥, 믿고 따랐던 직원들까지 모든 것들이 사라진 거니까요. 3년 동안 허공에 떠있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저를 믿어주며 든든한 뒷받침이 되었던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습니다. 시간이 약이 되어 저는 조금씩 내가 쌓아왔던 스피커 제조 관련 분야에서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걸 잃었지만 청춘을 바쳤던 경험과 기술력은 남아있었으니까요.
Q. 이어폰을 아이템으로 선정한 이유가 있나요?
잘 알려진 아이템에 경쟁도 치열하다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레드오션이란 소리였죠. 하지만 레드오션이라는 건 시장이 형성돼 적은 자본으로 뛰어들 수 있다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블루오션은 시장이 없기 때문에 빛을 보려면 긴 시간과 많은 자본금이 필요하겠죠. 또한 내가 가진 스피커 기술력을 활용한다면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디자인부터 제조까지 직접 뛰어들었습니다. 최고의 품질의 이어폰을 만들기 위해 연구에 돌입했죠. 처음에는 고급 이어폰을 만들었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브랜드 파워가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저는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중저가 가격에 고급 제품 못지않은 제품력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자고요. 이런 가격에 이런 음향이 나올 수 있냐며 저희 제품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합리적인 가격과 뛰어난 품질로 말입니다.
Q. 특별한 마케팅 없이 알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특별한 마케팅을 하기엔 자금이 여유롭지 않았었죠. 저는 온라인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향 전문 사이트에 들어가 전문가처럼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쪽지를 보냈죠. 영향 있는 사람들을 먼저 섭외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제품을 사용해보고 평가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안 좋은 점도 솔직하게 들을 수 있게 말이죠. 온라인의 장점은 서로의 나이와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많은 젊은 사람들과 편하게 얘기를 할 수 있더라고요. 그렇게 이어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편하게 다가가며 저희 제품을 권했죠. 그렇게 저희 제품을 테스트해본 사람들이 늘어나며 자연스럽게 바이얼 마케팅이 되더군요. 그 사람들이 인정해주니 다른 소비자들도 저희 제품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인정받을 수 있는 제품력도 따라주었기 때문이지만요. 그런 마케팅으로 저희 브랜드의 인식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Q. 자신처럼 좌절을 겪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고요?
2013년, 제가 재도전에 큰 힘을 얻은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중소기업청에서 주관했던 재도전 수기 공모전에 당선된 일이었죠. ‘실패가 자산이 되는 사회, 국민 모두가 응원합니다.’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저는 눈물이 핑 돌았었습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수기공모전에 응모했죠. 그 공모전에서 저는 대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공모전 당선 이후 이런 제 사정을 알던 지인들은 저를 위안했고 몰랐던 지인들은 저를 응원해주었습니다. 저는 과거가 밑거름이 되어 지금의 제가 있듯이 앞으로의 앞날을 후회하며 살면 안 되겠다는 깨우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전하지도 않았던 것이라는 말처럼. 실패는 창피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저를 당당히 들어내는 자신감을 얻었죠. 그리고 대상에 당선되며 저와 같이 좌절을 겪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하나의 목표가 생겼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요?
그렇게 차근차근 티피오스를 알려 지금은 G쇼핑 사이트에서 이어폰 부분 판매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사이트와 합작해 신제품을 선보일 준비 중이고요. 내수를 탄탄하게 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