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사상 처음 연 1%대로 떨어졌습니다.
급증세인 가계부채 등에 대한 부담은 크지만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낳을 정도로 미약한 경기 회복세를 뒷받침하려는 결정입니다.
한은은 12일 이주열 총재 주재로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본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종전 연 2.00%에서 1.75%로 인하했습니다.
작년 8월과 10월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내린 데 이어 다시 5개월만에 0.25%포인트 더 내린 것입니다.
지난해 두차례 금리 인하와 정부의 경기 부양 노력에도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자 성장 동력을 뒷받침하려고 추가 인하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펴는 나라들이 늘면서 이른바 '통화전쟁'이 전세계로 확산된 점도 금리 인하의 배경으로 꼽힙니다.
올해 들어 유럽중앙은행(ECB)이 양적완화에 나섰고 중국, 인도, 덴마크, 폴란드, 인도네시아, 호주, 터키, 캐나다, 태국 등 많은 국가가 기준금리를 내려 결과적으로 자국의 통화가치를 낮췄습니다. 엔화와 유로화의 평가절하는 이미 우리 수출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금리 인하가 소비와 투자 심리를 얼마나 자극해 경기 회복세를 뒷받침할 지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소비와 투자 부진은 구조적인 문제 탓"이라며 "금리 인하가 실물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기대효과는 이처럼 의문시되지만 부작용은 오히려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당장 작년 두차례의 기준금리 인하와 정부의 부동산금융 규제 완화 이후 지속돼온 가계부채의 급증세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층 가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풀린 돈이 소비나 투자로 이어지기보다는 부동산 시장에 몰려 전세가와 집값만 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올해 중후반으로 예상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정책금리 인상 개시 등 출구전략의 본격화를 앞두고 단행된 기준금리 인하여서 내외 금리차 확대에 따른 자본유출도 유의해야 합니다.
사실상 이번 결정은 시장이 거의 예상하지 못한 '깜짝 결정'이었습니다.
실제 금융투자협회가 최근 채권시장 전문가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114명 중 92.1%가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했습니다.
그 이유는 현 기준금리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2월부터 17개월간 2.00%로 운영된 종전 사상 최저치와 같은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시기적으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이르면 6월께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조기인상론의 가부가 정해지는 회의를 1주일 정도 앞둔 미묘한 시점입니다. 연준은 내주 17∼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여는데 이 회의 결과를 설명하는 성명에서 '인내심'(patient)이라는 단어가 빠지면 6월에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신호가 됩니다.
최근 이주열 총재는 기준금리가 사상 첫 1%대로 인하될 가능성을 열어두기는 했지만 이번 인하를 앞두고 충분한 사전 신호를 주지는 않았습니다. 방향지시등을 충분히 켜지 않고 차선을 변경한 셈입니다. 이르면 4월에나 내릴 것이라는 채권전문가 등 시장의 예측은 이런 배경에서 견고하게 유지됐습니다.
이에 따라 작년 두차례의 기준금리 인하 때처럼 소통 부족과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무언가에 쫓기듯이 급하게 금리 인하를 결정한 인상을 줬기 때문입니다.
최경환 부
특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금통위를 하루 앞둔 11일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전 세계적으로 통화완화 흐름 속에 우리 경제만 거꾸로 갈 수 없다"며 정부와 함께 통화당국을 상대로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