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말 터진 ‘가짜 백수오’사건을 계기로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건강기능식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던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은 제품이 ‘가짜’판정을 받아 충격적이다. ‘가정의 달’5월을 맞아 부모님들께 건강기능식품을 선물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적지 않은 혼란을 겪고 있다.
나이가 들면 젊음과 활력을 위해, 바쁜 직장인은 피로회복을 위해, 아이들은 영양보충과 키 성장을 위해 가정마다 적어도 2~3개쯤 건강기능식품을 먹고 있다. 꾸준한 운동과 올바른 식습관만 실천할 수있다면 건강기능식품을 먹을 필요가 없지만 ‘안먹는 것보다 낫겠지…’하는 플래시보 효과 때문에 먹는 사람들이 많다.
건강기능식품은 글자 그대로 ‘건강을 위한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식품’이다. 건강기능식품은 일반적으로 정제, 캡슐, 환, 과립, 액상, 분말 형태로 만들어져 의약품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약품이 절대 아니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가정의학과 박사(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어떤 특정 음식이나 건강기능식품이 암 사망률을 낮출 수있다는 객관적인 의학적 근거가 없다”며 “질병 예방과 치료를 통해 건강을 유지할 목적으로 각종 건강기능식품, 민간요법, 보완·대체요법을 사용하는 것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일”이라고까지 말한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는 “건강기능식품은 인체에 유용한 기능을 가진 원료나 성분을 사용해 제조한 식품으로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식품”이라며 “식약처에서 동물시험, 인체적용시험 등 과학적 근거를 평가하여 인정받은 기능성 원료를 가지고 만든 제품이 바로 건강기능식품”이라고 설명한다.
식약처에 따르면,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규모는 1조 7920억원(2013년 기준)으로 국내 생산액 1조 4820억원, 수입액은 3854억원이다.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홍삼이 약 40%를 점유하고 있고 이어 개별인정형(백수오 등 복합추출물, 헛개나무과병추출분말, 당귀혼합추출물, 마태열수추출물) 16%, 비타민·무기질 12%, 프로바이오틱스 5%, 알로에 4% 등의 순이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는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2009년 2조 8000억원이라고 밝혔지만 매년 두자릿수 성장을 감안하면 현재 약 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기능성 식품’이라는 용어는 1980년대 일본에서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상업적으로 대박을 쳤던 첫번째 기능성 식품은 1988년 오츠카제약이 만든 ‘화이브미니’라는 식이섬유를 함유한 소프트드링크였다. 일본 후생성은 1991년 FOSHU(특정 건강 목적 식품)라는 이름으로 특정건강관련 식품군에 대한 규칙을 제정해 법적으로 기능성식품의 상품화를 허용하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1989년 영양을 의미하는 ‘뉴트리션(nutrition)’과 약을 의미하는 ‘파머슈티컬(pharmaceutical)’의 두 단어를 합쳐 뉴트라슈티컬(nutraceutical)이라는 용어로 기능성식품이 등장했다. 미국은 뉴트라슈티컬이 법적으로 의미가 없고 약, 음식, 음식성분, 식이보충제로 각각 규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2년 8월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이 공포됐고 2004년부터 본격 시행됐다. 건강기능식품은 법률과 식약처의 정의를 정리해보면 ‘일반적인 영양기능을 가진 식품과 달리 건강유지 및 증진에 도움이 되는 생체조절기능을 가진 식품’이라고 할 수있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박사는 ‘비타민제 먼저 끊으셔야겠습니다(왕의서재 출간)’라는 책에서 “건강을 유지하고 개선한다는 것이 질병 예방과 치료없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면서 “건강기능식품의 정의와 개념이 이상하고 비과학적이다”라고 비판한다.
명승권 박사는 식약처가 정한 기능성 등급의 기준과 내용 역시 엉터리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기능성 등급이 가장 높은 질병발생 위험 감소기능은 질병 예방을 의미하므로 건강기능식품이 아니라 의약품으로 분류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능성 원료의 기능성 인정등급은 △질병발생 위험 감소 기능 △생리활성기능 1등급(00에 도움을 줌) △생리활성기능 2등급(00에 도움을 줄 수 있음) △생리활성기능 3등급(00에 도움을 줄 수있지만 관련 인체적응시험이 미흡함) 등 4개로 분류되어 있다. 2등급은 실험연구나 동물실험에서 생리학적 효과가 1등급만큼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지만 가능성이 발견되거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1편이라도 있을 때 2등급을 받는다. 3등급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아예 없음을 의미한다.
명승권 박사는 “생리활성 2등급과 3등급은 건강기능식품의 기능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으므로 분류할 가치가 없다. 하물며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정해 판매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말 현재 식약처에서 허가되어 판매되는 건강기능식품은 약 230여종이며 이중 95%가 생리활성기능 2등급과 3등급이다. 기능성 등급별 종류를 살펴보면, 질병발생 위험감소기능은 칼슘·비타민D(골다공증)·자일리톨(충치) 등 3종에 불과하다. 생리활성기능 1등급은 글루코사민, 대두이소플라본, 루테인, 지아잔틴,가르시니아캄보지아, 폴리감마글루탐산, 폴리코사놀 등 7종이다. 우리가 즐겨 먹는 홍삼, 오메가-3 지방산, 유산균을 비롯한 거의 모든 건강기능식품이 2등급과 3등급이다. 명승권 박사는 “그나마 건강기능식품이라고 봐 줄수있는 10종도 과학적 근거자료의 수준이 과학적 합의에 이를 정도로 높지 않다”며 “칼슘보충제나 비타민D, 자일리톨도 국제학술지에서 질환예방에 부적절하고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기능식품 효능을 놓고 부정적 인식이 강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거부감이나 의심없이 건강기능식품을 섭취하는 것은 내 몸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착각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진들은 건강기능식품 역시 약과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건강기능식품은 개개인의 체질과 질환에 따라 약(藥)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독(毒)이 될 수있다는 얘기다.
박진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좋다고 해서 무조건 먹고 보자는 생각을 했다가 오히려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며 “건강기능식품을 선택할 땐 우선 자신의 몸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료진과 상담하고 제품별 차이점, 용량 등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건강기능식품을 고르고 선물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가짜 백수오 사건으로 부실한 감독·관리로 식약처가 비판을 받고 있지만 굳이 건강기능식품을 구매하고 싶다면 식약처 인증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과대 표시광고도 조심해야 한다. ‘100% 기능향상’‘치료 효과 100%’등과 같이 질병을 치료나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제품은 일단 사기성이 농후하다. 건강기능식품은 치료제가 아닌 건강 보조제이기 때문이다. 성은주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좋은 원료로 제대로 만들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또 효과가 있다는 말은 그 효과에 따른 부작용도 가능하다는 말”이라면서 “건강기능식품이라고 안전하다고 생각해 복용 후 신체에 좋지 않는 변화가 생겨도 무시한다면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은주 교수는 이어 “복용 후 이상한 반응이 발생했다
최근 들어 홈쇼핑이나 케이블방송에 의사나 한의사들, 즉 쇼닥터(show doctor·닥터테이너)들이 효능이 좋다며 선전하거나 적극 권하는 건강기능식품도 액면 그대로 믿어선 안된다. 상당수 제품들이 그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임상적 근거가 없거나 부족하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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