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과 통화당국은 서로 핑계대지 마라”
한국 경제의 ‘싱크탱크’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재정·통화·금융당국이 각자 화살을 돌리고 있다”며 정책당국을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한국은행 등 경제의 3대 축이 서로 ‘남 탓’만 하면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조동철 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0일 2015년 상반기 KDI 경제전망을 내놓으며 “재정당국은 통화당국 때문에 못한다고 하고, 통화당국은 금융당국 때문에 못한다고 한다”며 작심 발언을 했다. 그는 “재정·통화·금융당국이 각자 주어진 미션을 잘 수행하는 것이 경제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KDI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정책당국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기자간담회 후 기자와 만나 “꼭 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해 발언을 준비했다”고 털어놨다. 한국 경제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안갯속으로 들어가고 있지만, 경제를 끌고 가야 할 정책당국이 서로 갈등을 빚는 상황이 걱정스럽다는 이유에서다.
갈등은 지난해 7월부터 불이 붙었다. 기재부가 경기활력 제고를 위해 금리인하의 필요성을 주장하자 한은의 독립성을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 특히 작년 9월 최 부총리의 “금리의 ‘금’자도 얘기 안했지만 ‘척하면 척’” 발언은 지금까지도 앙금으로 남았다. 한은은 지난해 8월과 10월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는데, 결정 과정에서 채권시장 기대감이 한 쪽으로 쏠린 것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시장을 자극한 기재부에 한은 내부적인 불만이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경기회복속도가 예상보다 더디다는 판단에 한은은 지난 3월 기준금리 인하를 1.75%로 또 한차례 인하했다. 다만 급속도로 늘어나는 가계부채의 연착륙을 위해 금융위는 보름 여의 시차를 두고 ‘안심전환대출’을 내놓았다. 여기서 통화당국은 다시 금융당국과 각을 세웠다. 주택금융공사의 2대주주인 한은이 오히려 기준금리 인하 효과를 반감시켰다는 비판을 의식하면서다. 안심전환대출은 주택금융공사가 주택저당증권(MBS)을 발행해 대출재원을 조달하는 구조다. MBS가 대규모로 시장에 풀리면서 한은의 의도와 달리 시중금리가 오히려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갈등은 점입가경으로 번진 것은 추경논란에서였다. 이 총재는 지난 4월 “경기회복과 성장잠재력 제고를 위해 재정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해줘야 한다”며 추경 논란에 불을 지폈다. 가뜩이나 세수부족 문제에 고민이 깊던 기재부는 발끈하며 진화에 나섰고,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재정당국을 곤란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추경얘기를 꺼낸 것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 수석이코노미스트의 ‘작심 비판’은 이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재정당국은 세수문제, 통화당국은 물가 문제,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문제처럼 각자의 미션을 잘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구조개혁이 난항을 겪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하며 “성장을 위해 뭔가 해야 하지만 어디서 누군가가 발목을 잡고 있다. 0% 성장하면서 모두가 잘살기를 바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KDI는 저물가 상황을 고려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재정정책에 대해서는 당분간 정부 기조를 유지
[최승진 기자 / 박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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