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퍼박테리아 MRSA |
이같은 항생제 남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박테리아가 출현해 인류에 반격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인류를 각종 세균으로부터 해방시킨 페니실린이 이제 한국인들에게는 더 이상 듣지 않을 정도”라며 “항생제만 있으면 모든 질병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깨진 지는 오래”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내성 있는 박테리아를 막는 새로운 항생제를 만들어 내자 박테리아도 이에 맞서 더욱 강력한 ‘슈퍼 박테리아’로 변신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연구팀이 끝없는 박테리아와의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새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워싱턴대 약학대학 브렌트 베버 교수 연구팀은 대표적 슈퍼박테리아인 ‘아시네토박터 바우만니’가 스스로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포기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눈길을 끈다. 연구 결과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게재됐다.
아시네토박터 바우만니는 치명적 박테리아다. 폐렴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환자의 약 10%가 이 박테리아에 감염되는데, 감염자 5명 중 1명이 결국 사망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항생제인 페니실린 계열도 듣지 않는다. 보건당국이 법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 6종의 슈퍼박테리아 중 하나다.
베버 교수는 바이만니 연구 과정에서 박테리아들이 동일한 숙주를 놓고 경쟁하면서 상대를 공격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바우만니는 경쟁 박테리아에 독을 주입해 죽이면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했다. 연구팀은 이 박테리아가 ‘킬러’로 변할 때 T6SS란 유전자가 작용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T6SS 유전자가 발현하면 주변 박테리아들을 죽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보통 바우만니와 달리 항생제 내성을 가진 바우만니(슈퍼박테리아)의 경우 T6SS를 억제하는 단백질이 있다는 점이다. 변종은 T6SS가 발현되지 못해 다른 박테리아들을 죽이진 못하지만 대신 ‘항생제 내성’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류충민 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다른 박테리아를 죽이려면 독소를 만들어야 하는 데 이는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이라며 “항생제 내성 능력을 갖추는 데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박테리아로서는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인지 기관이 없는 박테리아는 화학물질 신호를 통해 주변에 다른 박테리아가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며 “이 화학물질을 통해 박테리아에 거짓 신호를 준다면 속아 넘어간 박테리아가 항생제 내성을 포기하고 독소를 만들게 되는데 이때 항생제를 투여하면 치료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테리아의 이런 특성을 활용할 경우 슈퍼 박테리아 문제를 항생제 없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김건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팀장은 “이번 연구는 항생제 개발도 중요하지만 항생제 내성에 관여하는 유전자인 T6SS를 발현하게 해준다면 새로운 항생제 개발 없이도 박테리아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T6SS 유전
베버 교수는 “이번 연구는 새로운 항생제 개발보다 박테리아에 내재돼 있는 항생제 취약성 활용이 더 낫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슈퍼 박테리아 대응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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