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하철 전동차 4대중 1대가 도입된지 20년 이상 된 노후차량이지만 관련 규정 및 예산 미비로 교체가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노후 전동차는 승객안전에 위협이 됨은 물론 관련산업 고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운행되는 전동차 가운데 올해로 도입된 지 20년을 넘긴 전동차는 코레일 433량, 서울메트로 1호선 64량, 2호선 480량, 3호선 150량, 4호선 418량, 부산시 1호선 300량 등 총 1845량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현재 국내에서 운행되고 있는 전동차 7631량의 24%에 달하는 수치다.
이 차량들은 1985년~1994년 사이에 도입됐으며 이중 서울시 1호선 64량, 2호선 78량, 부산시 1호선 186량 등 400여량은 과거 사용내구연한으로 규정했던 25년마저도 넘긴 차량들이다.
현행 도시철도법은 노후차량 교체와 관련한 별도의 내구연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전동차의 내구연한은 15년이었지만 1996년 법이 개정되면서 25년으로 늘어났고 2009년 개정 때 다시 40년으로 연장했다. 올해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개정 도시철도법에선 관련 규정 자체를 삭제했다. 사실상 전동차를 무기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만성적자 상태인 국내 도시철도공사 입장에선 예산을 투입해 노후 전동차를 교체할 유인이 별로 없다. 신규노선에 필요한 차량 구입때는 정부가 구입비용의 50%를 지원해 주지만 노후차량 교체는 운영사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노후 차량 교체비용이 고스란히 지하철 운영사의 부채로 전가되는 현실”이라며 “운영사는 무조건 노후차량의 가동기한을 늘리려 하고 이 과정에서 승객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현재 운행중인 노후 차량의 경우 내구연한 규정이 존재할 때 제작된 차량으로 설계수명이 20년 안팎이라는 사실이다. 제작 당시 최대 20년을 내다보고 설계된 차량들이 ‘정년’을 훨씬 넘긴 지금도 여전히 현역으로 달리고 있는 셈이다.
업계는 최근 빈발하는 지하철 사고가 상당부분 전동차 노후화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월 부산 지하철 1호선에서 발생한 전동차 내 화재사고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8월 서울지하철노조가 조합원 306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5%가 ‘지하철 안전이 심각하다’고 답하면서 그 첫번째 원인으로 ‘시설 장비의 노후화’(81%, 복수응답)를 꼽았다.
관련 산업도 ‘기근’ 상황이다. 지난해 코레일 등 지하철 운영사가 발주한 총 178량으로 2500억원 수준이었다. 국내 전동차 제작업체로는 현대로템, 로윈, 우진산전 등이 있는데 2500억원은 현대로템의 지난해 철도부문 매출(1조6000억원)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그나마 신규노선 개통이 있는 해는 사정이 낫지만 어떤 해는 전체 발주규모가 500억원에 미치지 못할 때도 있다.
영세 부품사들은 더 죽을 맛이다. 한국철도차량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의 철도차량 관련 부품업체는 총 266개사로 이들의 연평균매출은 13억 가량에 불과하다. 전동차의 진입과 퇴출이 규칙적으로 이뤄져야 안정적
철도차량산업협회 관계자는 “무엇보다 국민안전을 위해서 철도차량 내구연한제를 재정비하고 정부가 노후차량 교체 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원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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