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간 서울 동부권 대표 면세점이었던 워커힐면세점이 문을 닫게 되면서 눈물의 재고 처리에 나섰다. 면세점 특허 재승인을 받지 못하자 700억원 가량의 재고를 털어내기 위해 대대적인 가격 할인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워커힐면세점의 ‘땡처리’ 세일 여부는 스마트 쇼핑족들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최근 쇼핑 관련 카페나 블로그에는 “ 문 닫는 워커힐면세점이 땡처리 하면 그게 진짜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일텐데요”, “언제부터 재고 할인 들어가는지 아시는 분 있나요?”와 같은 글들이 종종 올라왔다. 특허 만료 전에 재고 처리에 나서면 면세점 제품을 보다 싼 가격에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23일 면세점업계 등에 따르면 SK 워커힐면세점은 일단 임직원 세일이라는 형식으로 재고 처리에 나섰다. 직원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리지는 않았지만 사내 임직원전용쇼핑몰에서는 일부 품목들을 많게는 80%가까이 할인하면서 해외 출장·여행을 앞둔 직원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간혹 세일폭이 큰 임직원 특가 세일을 진행할 경우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문자를 돌리는 등의 판촉활동이 이뤄졌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조용히 재고 정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평소에도 SK그룹 계열사 임직원들은 면세점 제품에 대해 10~20%가량 추가 할인 혜택을 받아왔지만 이번 ‘마지막 세일’에는 할인폭을 대폭 늘려 일부 상품은 일반 고객에 비해 절반 이하의 가격에 구입이 가능하다.
가령 현재 일반 홈페이지에서 5%만 할인하고 있는 코치 크로스백의 경우 임직원들에게는 50%의 할인가에 판매하고 있으며 126달러인 레스포삭 가방은 80%할인된 26달러에 판매중이다. 할인율이 전혀 없는 마이클코어스 가방(258달러)을 임직원들은 60%이상 저렴한 가격(103달러)에 구매할 수 있다. 스와들, 캐시크루즈, 에르고 베이비 등 유아용품 브랜드도 일반인 대상으로는 할인되지 않지만 임직원 대상으로는 50~60% 할인된 가격에 판매중이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일부에서는 ‘이중가격’(같은 상품을 다른 가격으로 파는 일)이라며 비난할 수도 있지만 지금 사업을 접어야하는 이 상황에서 우리가 그런 것을 따질 수나 있겠냐”며 “멀쩡한 상품을 가격을 후려쳐서 내놓으려니 정말 속이 터지지만, 최대한 재고를 정리하고 수습하는 게 우선”이라고 털어놨다.
이같은 대규모 임직원 세일이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SK 직원들의 지인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 SK네트웍스 직원은 “해외에 나갈 일이 있는 친구들에게 임직원 할인 혜택을 받게 도와달라는 전화를 종종 받고 있다”며 “세일폭이 크다보니 일부러 세일품목을 사기 위해 가까운 홍콩이나 일본행 비행기표를 사는 사람들도 있다”고 귀뜸했다.
임직원이 아닌 일반 고객들에 대한 세일 행사도 이르면 내달 실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워커힐면세점은 대부분 브랜드가 참여하는 그랜드 세일을 최근 시작했다. 할인폭은 30~70%로 과거 세일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폐점 시간이 다가오면 할인폭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면세점 특허를 반납했던 대한항공은 면세점 폐점을 앞두고 재고 품목에 대해 파격적인 고별 할인행사를 실시했었다. 워커힐면세점도 내년 2월 영업종료 시점이 다가오는 시점에 대규모 할인을 통한 재고정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워커힐면세점 관계자는 “대폭 할인을 실시하려면 브랜드들과의 협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패션·잡화 등 유행에 민감해 재고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제품은 최대 90%까지 할인해 판매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 월드타워점도 워커힐면세점과 같이 특허 재승인에 실패하면서 재고 처리 부담을 떠안게 됐다. 롯데 월드타워점 재고는 기존 재고 1200억원과 사전주문 제품 400억원 등을 합쳐 16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워커힐면세점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면세점 사업을 완전히 접어야 하는 SK와 달리 롯데는 소공점과 코엑스점, 인천공항점 등 다른 면세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각 점포들이 이미 사
폐점되는 면세점의 경우 재고를 모두 소진하지 못할 경우 남은 재고들은 관세청으로 이관돼 공매를 하거나 제품을 불태워 처리하는 멸각 절차를 밟게 된다.
[손일선 기자 / 이새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