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호한테 1등은 어려울 것 같아”
“네? 무슨 말씀이신지…”
“성호 엄마가 애랑 워낙 잘 놀아주니 난 항상 2등이네(웃음)”
그제서야 선생님 말씀이 이해가 된 나는 “에이~공동 1등이시죠” 라고 웃으며 답했다. 아침 출근길, 10개월 된 아기를 일대일로 돌봐주시는 선생님과의 이 대화가 날 하루종일 즐겁게 만든다. 가끔 ‘난 몇 점 쯤 되는 엄마일까’ 스스로 질문하며 자책했던 내게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가 육아를 하는데 자신감을 불어 넣어줬다. 더불어 하루 12시간 가까이 엄마의 빈 자리를 대신해주려고 애쓰시는 선생님 모습이 엿보여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워킹맘들 사이 우스갯소리로 복(福) 중에 가장 큰 복은 ‘이모님 복’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자기 아이와 또 가족과 잘 맞고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베이비시터를 만나기가 쉽지 않음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난 이모님 복이 ‘대박’ 터졌다. 엄마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성호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아주며 안전하게 돌봐주는 분을 만났기 때문이다.
주말 사이 내가 본 아기의 신기한 동작이나 옹알이 하나를 두고 선생님께 말을 하면, “맞아맞아, 그거”라고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나와 대화를 나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아기의 성장 과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는 것도 모자라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주기까지 하니 비록 몸은 아기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항상 곁에 있는 듯하다.
아기가 열이 나 보채는 날이면, 나 대신 택시를 타고 병원을 다녀오신다. 추운 날씨일수록 아기에게 차가운 공기를 쐬지 않게 하려고 온몸으로 감싸 안고, 손에는 아기 짐을 한 가득 쥔 채 병원을 다녀와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오가는 길이 얼마나 고생스러웠을지 알기에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든다.
기저귀 발진이 나더라도 며칠만 지나면 씻은 듯이 낫는다. 그 사이 선생님이 얼마나 정성스레 씻기고, 닦고 연고를 바른 후 또 건조까지 잘 시켜주셨음을 알 수 있다. 주말 근무가 불규칙적으로 있는 내게 사전에 스케쥴 조정만 하면 기꺼이 ‘오케이’ 를 외치는 선생님. 이같은 선생님을 만난 것은 정말로 복 중의 복이다.
지난 3월 출산 휴가에 들어감과 동시에 난 여성가족부에서 하는 ‘아이돌봄서비스(맞벌이 가정 등을 위해 가정을 직접 방문해 아이를 일대일로 돌봐주는 서비스)’를 신청했다. 지금의 선생님을 만나게 해준 서비스다.
신청 당시 담당 직원으로부터 들었던 말은 1년 정도 뒤에나 이용이 가능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거주지를 기반으로 동네 인근에서 해당 아이돌봄서비스를 신청한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적다보니 그 짝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복직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때까지도 아이돌봄서비스 측으로부터는 어떤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 대개 복직 한달 전에는 어린이집이든, 베이비시터를 구하든 엄마 아닌 다른 사람이 돌봐주는 공동 양육 방식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급한대로 난 동네 어린이집을 알아봤다. 그런데 다들 첫마디가 “돌은 지나야 받을 수 있는데요”였다.
6개월짜리 아기를 맡길만한 곳을 도무지 찾기가 어려웠다. 아무래도 아기가 어릴수록 손길이 많이 가고, 어쩌면 이 아기를 보기 위해 어린이집 입장에선 선생님을 따로 구하고, 아기 침대 등을 새로 사야할 수 있어 거절할 수 있겠다고 머리로는 생각했다. 하지만 밀려드는 좌절감이란, 속상함이란, 나아가 워킹맘은 어떻게 일하라는 것인지 ‘나라’를 원망하는 마음까지는 어찌할 수 없었다.
아이돌봄서비스 측에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를 걸었다. 아기를 맡길 만한 곳이 없으니 꼭 좀 부탁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얼마나 많이 전화했으면 목소리만 들어도 담당 직원과 척척 서로를 알아볼 정도가 됐다.
담당 직원이 무슨 죄라고, 내게 미안하다는 말도 여러번 했다. 하지만 아이돌봄선생님(아이돌봄서비스에서는 이모님 등의 호칭 대신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실제 어린이집, 놀이방, 유치원 등을 직접 운영했거나 보육 교사 자격증 등을 보유한 선생님들로 돌봄서비스와 관련된 사전 교육을 철저히 받기 때문)을 제 때 구할 순 없었다.
반쯤 포기하고 동네 어린이집에 일주일 정도 다니고 있을 때였다. 아기가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앞으로 걱정이 태산같았을 때, 따르릉 전화가 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전화였다. 운 좋게도 내가 원하는 근무요건과 딱 맞는 선생님이 나타났다.
서둘러 면접을 봤고, 아기 양육 방식에 대해 교감을 나눴다. ‘이 분이다’ 싶어 지금까지도 인연을 잘 이어나가고 있다.
CCTV를 달까 말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CCTV는 서로 믿지 못한다는 증거여서 불편하다고 했고, 일단 본인을 믿고 맡겨보라고 했다. 나 역시 내 돈을 주고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이유로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것이 불편했다.
불안했지만, 선생님을 믿고 지켜봤다. 결과는 대만족. 아기는 거짓말을 못한다. 사랑으로 자기를 돌봐주는 선생님에게 금방 애착관계가 형성됐고, 내 눈에도 그게 보였다.
선생님과 나 둘다 에둘러 말하기 보다는 솔직하게 얘기를 나눈 것이 짧은 시간 강도높은 친밀감을 형성하게 했다. 낯선 이에게 내 세간 살림을 모두 다 공개하고 생활의 큰 축을 공유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갈등 역시 없을 순 없다. 근무시간 조정이나, 임금과 식사 문제 또 집안일을 어디까지 해야하나 등등의 범위 설정까지.
하지만 그럴수록 솔직함이 서로의 신뢰를 쌓고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인 것 같다.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위치가 아니라 나 대신 내 아이를 책임지는 분인 만큼 존중하는 마음 역시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 고맙거나 감동받은 일이 있으면 그 즉시 감사함을 표현하려고 애썼다. 출퇴근 인사와 같은 사소한 행동에서부터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런 나의 노력은 고스란히 우리 아기에게로 돌아왔다.
참고로 아이돌봄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미리 동네 주민자치센터에 가서 소득수준에 따른 등급판정을 받아야한다. 그 등급판정 결과에 따라 정부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이다. 시간제와 종일제로 서비스 종류가 나뉘며 이용요금은 시간당 6000원이다.
신청 절차 등이 처음에는 까다롭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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