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다시 곤두박질을 치는 가운데 저유가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유가 하락은 휘발유 가격 등 국내 기름값 하락을 통해 소비자들의 실질 구매력을 높여주는 긍정적 역할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산유국과 중국 등 이머징마켓 경제를 침체시켜 대외 수출에 부정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4일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외 수출에서 신흥국 및 개발도상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58.2%에 달한다. 이들 국가들은 자원 부국으로서 1차산업 비중이 높기 때문에 원자재 가격 하격에 따른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원유가격이 급락할 때는 다른 원자재 가격도 동반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문에 실제로 천연가스·구리 등 신흥국에 풍부한 다른 원자재 가격도 추락하면서 신흥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지난 1월 한국 수출이 18.5%나 급락한 배경도 원유값 하락 등에 따른 이머징마켓 수입수요 감소 효과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국제유가가 급락하기 시작한 2014년 7월 이후 미국, 유로 및 일본 등 주요 수입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하락했다”며 “상당수 국가에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재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저유가는 1차적으로는 신흥국 경기침체로 나타나지만 이것이 장기화될 경우 결국 세계화로 인해 상호의존도가 높아진 세계 경제가 다같이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얘기다.
온기운 숭실대 교수는 “저유가로 인해 신흥국 뿐 아니라 셰일가스에 큰 투자를 한 미국계 석유회사들이 큰 손실을 보고 감원에 돌입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머징마켓 뿐만 아니라 그나마 살아나고 있던 미국 경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원유수입국인 한국에 저유가는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의 원유 수입액은 지난해 551.3억달러를 기록해 전년도에 비해 41.9%나 감소했다. 한은은 지난해 1060억달러로 사상 최대의 흑자를 낸 경상수지가 유가 하락효과를 빼면 703억달러로 축소될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유가하락 효과를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국내 기름값의 60% 안팎이 유류세 등 세금으로 구성돼있는데다 경제 불안이 가중되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이후 이번달 초까지 유가(두바이유 기준)가 리터당 61.23달러에 28.47달러로 반토막이 나는 동안 국내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574원에서 3일 1361.21원으로 13.5% 하락하는 데 그쳤다.
조규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유가 하락의 긍정적 영향을 극대화 하기 위해 유류 유통구조의 투명성을 확대하고 공공요금에 유가 하락 효과를 제때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종합해보면 내수보다는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경제구조 특성상 지나친 저유가 상태가 ‘오래’ 지속돼 세계경제 침체를 주도할 경우에는 기름 한방울도 나지 않는 한국에도 축복보다는 저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셈이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수출·입 비중인 대외의존도는 2014년 기준 99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국제유가 급락에도 불구하고 석유수요가 크게 확대되지 않는 것은 석유의 시대가 끝나가고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로서는 에너지 자립도 확대를 위해 신재생 에너지와 이를 활용한 수송시스템으로의 이행에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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