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부터 말하자면 인간은 1990년대 후반 IBM의 딥블루와 체스대결에서 패배했다. 2011년에는 미국 퀴즈프로그램 제퍼디에서 또 다른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이 인간대표 2명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은 ‘안다’와 ‘할 수 있다’에 관한 판단 능력과 속도에 있어서는 이미 컴퓨터에게 오래전에 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외의 측면에서 인간은 여전히 앞으로도 굉장히 오랫동안 컴퓨터를 이길 수밖에 없다. 바로 ‘모른다’와 ‘할 수 없다’에 대한 판단 능력과 그 속도다. 제퍼디를 예로 들어보자. 왓슨은 퀴즈 내용에 포함된 세 가지 단어의 조합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답을 말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오답율은 10% 정도였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무엇에 대해 알고 있는지 여부를 엉뚱하게도 친숙함에 기초해 판단한다. 그래서 오답이 아니라 아예 모른다는 판단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할 수 있다. 예전에도 본 지면을 통해 이런 질문을 드린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수도 이름을 아십니까?“라는 질문에 우리 모두는 ”예“라는 대답이 쉽게 나온다. 반면 ”이집트에서 5번째로 큰 도시 이름을 아시나요?“라는 질문에도 ”아니오“라는 대답이 같은 속도로 매우 쉽고 빠르게 나온다. 그런데 이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인간의 생각이 지닌 대단한 능력으로 볼 수 있다. 컴퓨터는 모른다(즉 그 파일 혹은 정보가 하드디스크에 없다)고 대답하기 위해 자신의 시스템을 ‘검색’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 찾아보지도 않고 우리는 모른다는 답을 빛의 속도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을 하는 기제를 인지 심리학자들은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 부른다. 쉽게 말하자면 ‘안다’와 ‘모른다’ 혹은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에 관한 판단의 잣대를 인간은 하나 더 가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판단 근거의 대부분이 무엇이냐이다. 바로 ‘친숙함’이다. 인간은 친숙하면 ‘안다’ 혹은 ‘할 수 있다’는 판단을 쉽게할 수 있다. 또한 완전히 낯설면 ‘모른다’와 ‘할 수 없다’는 판단도 빛의 속도로 할 수 있다. 물론 그 판단의 정확함은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다.
왜 정확하지 못하더라도 친숙함이라는 단 한 가지 측면만 가지고 인간은 판단을 할까?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 보다는 빠른 판단을 통해 그 다음에 할 행동을 되도록 빨리 결정하는 것이 더 생존에 적합하다. 알면 그대로 실행하면 되는 것이고 모르면 찾아보거나 배우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다음 행동을 빨리 취할 수 있음으로 인해 오는 장점이 정확한 판단을 장고 끝에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연하게 세상에 적응해 가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알파고에 이세돌 9단이 지고이기는 것을 인류의 미래와 연결시키는 것은 이제 잠시 접어두고 이것이 경영에 주는 교훈을 생각해보자. 첫째, 친숙하기는 하지만 실은 아는 것이나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일이나 대상에 대해 무작정 덤벼들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지 되돌아보자. 둘째, 이미 대부분의 능력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제목이나 프레임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지 점검해 보자. 의외로 많다. 이처럼 모르는 일에 도전해 낭패를 보지 않는 것과 잘 아는 것인데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능력이다. 능력 자체를 개발하고 지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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