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기나 복사기로 돈을 비슷하게 찍을 수는 있어도 모양이 찍히는 종이를 만드는 기술은 ‘짝퉁’을 가려내는 최후의 보루다”
우리나라의 돈은 하나의 공장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충남 부여에 위치한 한국조폐공사 조폐본부에서 돈이 찍히는 종이를 만든 후에 화폐본부로 운반한후 인쇄과정을 거쳐 실제 시장에서 사용하는 ‘돈’이 탄생한다. 종이를 만드는 것과 인쇄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질문에 조폐본부 관계자들은 ‘종이가 짝퉁을 가려내는 최후의 보루라 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조폐본부로서는 당연한 대답이지만 일리있는 얘기다. 이 종이에는 문양이 인쇄되기 전부터 은선, 형광재료, 은화(숨은 그림) 등 각종 위·변조 기술이 들어간다. 즉 이곳에서 만든 종이를 얻을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쉽게 ‘가짜 돈’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종이가 세상으로 나오는 ‘24시간’…이색 보안기술 눈길
지난 11월 방문했던 화폐본부와 마찬가지로 조폐본부 역시 삼엄한 보안과정을 거쳤다. 서약서에 자필로 개인정보를 넘겨야 조폐본부의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핸드폰 촬영이 전면 금지됨은 물론 등록한 전문 카메라로만 촬영할 수 있다. 공장곳곳에 달린 CCTV 수백개와 벽에 붙은 ‘파지 한장 발생, 500원 원가 상승’ 등의 표어는 쉴새없이 돌아가는 돈 종이 공장의 중요성에 무게를 더했다.
이곳 제지본부에서 돈종이를 만들어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4시간. 꼬박 하루가 걸리는 셈이다. ‘지료→초지→검수’ 등 세단계의 공정 과정마다 위·변조 기술이 차곡차곡 쌓이기 때문에 일반 제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시간이 소요된다.
지료단계는 은화와 은선이 삽입되기 전 돈종이의 기본틀을 만드는 과정이다. 우즈베키스탄 자회사에서 공급받은 펄프를 풀어주면서 불순물을 제거한후 적정크기로 자른다. 펄프의 원료는 나무가 아닌 목화솜이다. 돈이 물속에서도 원래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육안으로는 확인이 어려운 형광색의 색섬유를 입힌다. 실제 완성된 지폐를 자외선에 비춰보면 지폐곳곳에 가느다란 선 모양의 섬유가 보여 위조 지폐를 가리는 수단 중 하나가 된다.
초지 단계에서는 지료에 은화와 은선을 입힌 후 화학약품으로 표면처리를 한 후 강도를 향상시켜 건조, 광택을 거친 후 완성된 종이를 두루마리 형태로 만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최대 4mm의 은선을 종이에 넣고 있다.황망을 압사해 밑그림인 ‘은화’를 그리는 과정도 포함한다. 1만원짜리 지폐를 햇빛에 비춰봤을 때 나오는 세종대왕 그림 등이 은화에 속한다. 은화는 화폐보안기술의 핵심이며 칼러복사기나 스캐너로도 따라만들 수 없어 보안기술의 핵심이다.
마지막 검수 단계에서는 종이를 최종 확인한 뒤 가장자리를 처리해 묶음 포장한다. 1mm라도 오차가 나면 돈의 신뢰성 자체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조폐공사 직원들은 신경을 곤두세울수 밖에 없다. 종이는 500장 단위로 포장돼 화폐본부로 출발한다.
◆한 조각의 종이도 밖으로 나갈 수 없어…선물로 남은 ‘펄프’
위폐를 가려내는 최후의 보루다 보니 돈종이를 둘러싼 보안은 생각이상으로 철저했다. 샘플용 돈종이의 일부를 찢어 자외선에 하나하나 비춰주던 조폐공사 관계자는 급히 조각을 샘플 종이에 맞춰놨다. 한 조각이라도 외부에 방출된다면 해당 종이로 만는 위조지폐는 판별하기 쉽지 않아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종이를 가져가겠다는 기자의 기대도 산산조각났다. 실제 조폐공사의 완성된 돈종이가 외부로 방출된 적은 한차례도 없다.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서는 종이를 몰래 방출할 수는 없지만 조폐공사의 손을 거친 돈종이들은 해외 곳곳에서 제몫을 하고 있다. 제지본부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등으로도 화폐용지를 수출한다. 현지에서 볼 수 없는 색의 섬유를 넣어달라는 등 각국의 상황에 맞춰 최고 품질의 ‘돈종이’를 만든다.
조폐공사는 돈을 만드는데 필요한 첨단기술을 온전히 돈생산에만 사용하지 않는다. 각분야와 협력해 해당 분야의 보안성을 향상시키고 공사도 수익모델을 다각화하는 시너지를 내고 있다. 이날 공사는 3D 입체 필름을 활용한 화장품 용기, 주유소 리터기 조작을 막을 수 있는 ’Kshell’등을 선보였다.
견학을 마친 후 이내 아쉬워하는 기자들에게 조폐공사 관계자들은 “돈종이는 드릴 수 없다”며 재차 강조하며 웃었다. 대신 돈종이를 만드는 핵심 재료인 우즈베키스탄 자회사에서 온 펄프를 기자들의 손에 쥐어줬다. ‘꿩 대신 닭’이라는 생각에 펄프를 손에 꼭 쥐고 집으로 돌아갔다.
결론적으로
[디지털뉴스국 김진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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