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삼성전자 월급날.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의 디지털시티는 퇴근시간인 5~6시 사이에 회사 내부에서부터 극심한 교통정체를 겪었다. 한꺼번에 많은 퇴근 차량이 몰리면서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가는데만 20~30분이 걸린 사람도 있었다.
그동안 수원디지털시티에서 퇴근 교통정체가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상당수의 직원이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거나 일찍 사무실을 나선다고 해도 정시퇴근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퇴근을 위한 셔틀버스도 대부분 오후 7시를 전후해 집중되어 있다.
평소와 다른 교통정체의 주원인은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무선사업부의 집단 퇴근이다. 이 곳을 담당하는 고동진 사장이 이달부터 매월 월급날을 ‘패밀리 데이’로 정하고 이 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오후 5시에 전 직원이 사무실을 비우고 가족과 저녁을 함께 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해 4월부터 자율출퇴근제를 채택하고 있어 공식 출퇴근 시간은 없지만 통상 오전 8시 출근-오후 5시 퇴근이 근무 시간으로 통한다”며 “개발 작업 때문에 야근이 많은 무선사업부는 주말도 밤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자율출퇴근제는 직원들이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 사이에 하루 4시간 이상, 주 40시간만 일하기만 하면 출퇴근 시간을 1주일 내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그간 일찍 출근해도 야근으로 이어지는 폐단이 계속 발생하면서 조직 내부에서 불만이 많았다.
이러한 직원들의 불만 해소를 위해 사업부서를 맡고 있는 최고위층들이 직접 나섰다. 지난달 고질적인 관료주의 문화와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관행 등을 버리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기업처럼 유연한 조직문화를 갖겠다고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 선포식’을 가진 뒤 생긴 변화다.
TV와 생활가전사업 등이 포함된 CE부문은 지난 22일 ‘불~끈데이(Day)’를 가졌다. 경상도 사투리로 ‘불을 끈다’를 재치있게 표현한 것이다. ‘불끈’은 CE부문 대표인 윤부근 대표의 별명이기도 하다.
이날 CE부문이 근무하는 모든 사무실의 전등은 오후 5시30분에 일제히 꺼졌다. 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게 원천 차단해 버린 것이다. CE부문은 매월 네째주 금요일을 ‘불~끈데이’로
삼성전자 관계자는 “회의시간이 유달리 긴 임원에게 서서 회의를 하도록 하거나 중간에 호출을 해 회의를 짧게 끝내도록 유도하는 사장들도 있다”며 “선포식 이후 경직적인 근로환경을 변화시키려는 많은 노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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