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매일경제와 인터뷰를 하면서 정치권에서 촉발된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한 부작용을 크게 염려했다. 42년간 한은에 몸담았던 이 전 총재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금리.환율 정책을 놓고 ‘경질설’이 불거질 정도로 정부와의 마찰을 마다하지 않은 소신파로 꼽힌다.
우선 이 전 총재는 정치권에서 처음 주장한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 “양적완화가 유행이니까 명칭만 가져다 쓴 것일 뿐 지금 언급되는 양적완화는 전혀 양적완화가 아니다”며 “개발 연대 시절에 활용하던 정책금융을 부활시키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산업은행 채권을 인수하려면 돈이 들고 재정건전성 악화 등의 문제가 제기되니 한국은행더러 대신 내라고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은행이 개발연대 만들어진 정책금융의 역할을 지금도 하고 있다며 그 예로 ‘금융중개지원대출’를 강조했다. 이 총재는 “수출 금융 등 필요한 부문별로 한도를 배정한다”며 “예전 정책금융의 마지막 잔재가 남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전 총재는 “경제가 어려우면 중앙은행이 ‘무슨 짓이든 못하겠느냐’에서 출발한 것이 양적완화고 또 그런 상태라면 중앙은행이 (무슨 일이든) 왜 못 하겠느냐”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더라도 특정 부문에 돈을 직접 몰아주는 것만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전 총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나 유럽중앙은행도 특정 산업에 국한해 돈을 주지는 않았다”면서 “이것이 중앙은행의 최후의 양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적완화의 원조격인 일본도 일본 국채를 무한정 발행할테니 일본은행이 무한정 인수하라는 정도였다는 부연설명도 곁들였다. 한마디로 특정 산업지원에 대한 지원을 넘어 결국 부실이 명확한 특정 대기업 지원에 별다른 근거없이 국민 증세와 유사한 효과를 갖는 발권력을 동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미국식 전면 양적완화에 대해 “미국은 기준금리 인하 등 쓸 수 있는 수단을 다 쓰고 난 뒤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양적완화를 했다”면서 “하지만 양적완화를 단행하더라도 통화정책을 넘어 이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바람직한 일이냐는 문제는 또 다른 고민이다”고 말했다. 양적완화로 당장 위기는 넘을 수 있지만 소득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는 데다 향후 유동성 회수에 따르는 고통 등에 대해 성찰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 전 총재는 당장 심각한 문제로 소득·재산의 불균형 문제를 꼽았다. 그는 “정치력이 없으니 이런 건 (해결)못하고 할 수 있는 게 결국 중앙은행 정책인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전 총재는 “(정치권에서) 경기를 살리려면 ‘건설업 부양이 최고다’고 한다. 그래서 계속 건설업 부양을 하면 당분간 고용이 늘고 소득이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면서 “하지만 그 소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장 정책하는 사람들은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니 만만한 ‘한국판 양적완화’같은 것을 내놓고 있지만, 이것이 어떤 폐단을 불러올지 누구도 자신있게 얘기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전 총재는
[이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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