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현실화되면서 국내 산업계가 대응방안 마련에 나섰다. 현지 법인들은 밤잠을 잊은 채 투표결과를 실시간으로 본사에 보고하면서 대책 수립에 돌입했다. 특히 설마했던 브렉시트의 향후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를 놓고 다각도로 분석에 들어갔다.
■시장 위축 우려하는 삼성·LG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가전업계는 유럽 내 시장 위축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 유럽은 그동안 경기위축으로 매출 비중이 계속해서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브렉시트는 가뜩이나 열악한 유럽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계기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2013년만 해도 21.2%에 달하던 유럽 지역 매출 비중이 지난해에는 12.8%까지 떨어졌다. LG전자도 같은 기간 11.2%에서 10.3%로 줄었다. 유럽 내 경기침체로 TV와 생활가전 휴대폰 전반에 걸쳐 시장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삼성 LG 모두 영국 내에는 별도의 생산기지가 없다. 삼성은 폴란드에 생활가전,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에 TV 공장을 두고 있다. LG도 주력 생산기지가 폴란드에 있다.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으로 TV와 생활가전 등을 수출하게 되면 별도의 관세 장벽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시장이 이원화되면서 별도의 전략 수립이 필요하게 됐다는 것도 부담이다. 이에 따라 영국 첼시 지역에 유럽본부를 둔 삼성전자는 이를 EU 역내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섰다. LG전자는 지난해 영국 런던에 있던 유럽본부를 독일 뒤셀도르프로 이전한 바 있다.
정유사업이 메인인 SK그룹에서는 직접적인 단기영향보다는 시차를 두고 몰아칠 후폭풍을 염려하고 있다. 정유사업에서 유가와 환율의 영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직접적인 수출 규모 자체는 크지 않아 별다른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브렉시트로 인해 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이면서 유가와 환율의 변동폭이 커지면 정유·화학부분인 이노베이션계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자동차는 오히려 반사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한-EU FTA에 따라 영국에 자동차를 무관세 수출하고 있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별도 FTA나 관세협약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영국 수출물량에 대해 10%의 관세를 물어야 한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한국과 경합관계에 있는 일본차도 영국 수출물량에 대해 관세를 물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일본차의 경우 영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다. 직접 수출물량외에 영국 현지에서 생산 판매되는 일본차는 한국차 대비 가격경쟁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다른 유럽국가에서는 상황이 반대로 바뀐다. 영국에서 생산된 일본차를 이들 국가에 수출할때 관세를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체코(현대차)와 슬로바키아(기아차)에 생산기지를 운영중인 현대기아차는 일본차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생겨나면서 반사이익을 얻을수 있다. 현대기아차는 올들어 5월까지 영국에서 7만8000대를 판매했다. 같은기간 유럽판매 40만2000대의 20% 수준이다.
■관세 영향은 제한적
브렉시트에 따라 지난 2011년 발효된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의 적용 대상 국가에서 영국은 제외된다. 2년간의 유예기간이 있기 때문에 오는 2018년부터 실제로 브렉시트의 영향이 나타나 영국으로 수출할 때는 관세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주요 수출품을 보면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근 3년간 수출금액 기준 상위 15대 품목을 봤을 때 1000cc와 1000~1500cc 휘발유 차량을 제외하고는 모두 관세율 0% 적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양이 ‘수출’된 제트유의 경우엔 영국 국적 항공기들이 한국에서 급유받은 것으로 실제 수출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급유를 받는 것이다 보니 이는 관세 유무와는 상관이 없다는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 외에 수출 금액이 많은 휴대전화와 축전지용 메모리, 전자제품은 한·EU FTA에 상관없이 이미 관세가 없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휴대전화와 전자기기 부분품 등은 FTA와 관계없이 ITA 협정에 따라 영국으로 무관세 수입되고 있다”며 “전자업종에서 제품 가격 경쟁력 하락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관세적용을 받게될 품목 중 과거 3년간 수출 규모가 가장 컸던 것은 비행기 부품으로 연간 수출규모가 7000만 유로(약 900억원) 수준으로 절대규모가 큰 것은 아니다..
류승민 무역협회 연구원은 “정밀화학 제품과 운송기계 부품, 섬유 등에서 관세가 부활되면서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또 정유 업체들은 브렌트유 조달시 관세 증가 등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거리가 먼데 따른 운송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유사들은 관세가 없는 영국산 브렌트유를 수입해왔다. 관세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 큰 부담은 브렉시트가 불러올 후폭풍이다. 당장 유가와 환율의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4일 국제 유가는 영국의 EU탈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급락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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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명 기자 / 정욱 기자 /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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