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검찰 소환 조사를 앞두고 자살한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69)은 신격호 총괄회장에서부터 신동빈 회장까지 대를 이어 그룹 오너가를 최측근에서 보좌한 2인자였다.
특히 그는 40년 넘게 롯데그룹에서 일하며 보수적인 롯데문화에서 파격적으로 이른 나이인 50세에 대표에 올라 2011년 비(非) 오너가로서는 최초로 부회장 타이틀을 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롯데그룹의 컨트롤 타워인 정책본부 본부장으로서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을 모두 보필한 롯데그룹의 ‘산 역사’로 불렸다.
1947년 8월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경북대사대부고와 한국외대 일본어학과를 졸업한 이 부회장은 1973년 롯데호텔에 입사한 뒤 롯데쇼핑 관리이사와 영업본부장, 부사장 등을 거쳤다.
1987년 롯데쇼핑으로 자리를 옮긴 후 백화점 상품매입본부 전무와 영업본부장을 거쳐 1997년 롯데백화점 대표에 올랐다. 이후 20년째 롯데그룹에서 CEO(최고경영자)를 맡으면서 국내 500대 기업 중 ‘최장수 CEO’ 기록을 세웠다. 철두철미한 업무처리에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윤리의식도 강했던 이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을 보필하며 앞에 나서지않는 ‘그림자 경영자’로 역할을 해왔다.
이 부회장은 눈빛만 봐도 신 총괄회장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복심’이었다. 그가 롯데쇼핑에서 근무한 10년동안 롯데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유통업계 1위로 부상함에 따라 신 총괄회장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소공동의 백화점과 면세점 등이 밀집한 ‘롯데 타운’을 지휘한 것도 그다.
이후 그는 2007년 정책본부 부본부장을 맡으며 당시 정책본부장이었던 신동빈 회장에게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신 총괄회장의 다소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경영스타일을 이어받은 그는 서구적이고 공격적인 경영 마인드의 신동빈 회장이 사업을 추진할 때 균형을 맞춰준 인물로 2011년 부회장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이처럼 그룹내에서 입지전적인 성과를 올렸지만 은둔의 경영자로 통했던 그가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지난해 롯데가 경영권 분쟁 때이다. 오랜 세월 신 총괄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오며 눈과 귀가 돼 주었던 이 부회장은 롯데 오너가족간 싸움이 그룹 내 진영 싸움으로 번지면서 신동빈 회장쪽으로 돌아섰다. 당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아버지인 신 총괄회장의 손을 빌려 이른바 ‘살생부’를 작성,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이인원 부회장, 황각규 사장등 신 회장 진영의 해임을 시도하기도 했다.
경영권 분쟁 사태 이후에도
[조성호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