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외길인생을 걸어온 CEO가 있습니다. 바로 권오수 클래식의 권오수 대표인데요. 권오수 대표는 유명인들이 입는다는 남성 맞춤 정장을 만들어 왔고요. 한국에선 생소했던 예복을 알린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의 발자취에 한국 양복의 역사가 묻어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은데요. 70세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현역이라 말하고 있는 ‘권오수 클래식’ 권오수 대표의 식지 않는 열정을 MBN ‘성공다큐 최고다’에서 만나보았습니다.
Q. 처음 남성 맞춤 정장을 접하게 된 계기는?
시골 친척 양복점에서 일을 하게 되며 처음 양복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골이다 보니 월급도 적고, 미래가 없어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는데요. 50년 전에 빈손으로 서울에 올라와 양복점에 취직했죠. 밑바닥에서 하나하나 배우며 디자이너로 실력을 키워나갔죠.
그렇게 실력을 키우고 자금을 모아 제 사업을 해보자 싶어 제 양복점을 창업하였는데요. 당시 손님들에게 손편지를 써서 고객 관리를 하고, 고급 맞춘 양복을 만들며 제 이름을 알려나갔습니다.
Q. 그러다 당시 한국에선 생소했던 남성 예복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맞춤 양복을 오래 해오며 당시 시장 상황을 보게 되었는데요. 맞춤 양복은 지는 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시 한국에선 예복이라는 개념이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결혼식에서 신부는 드레스를 입는데, 신랑은 예복이 아닌 양복을 입었었죠. 격식을 갖추자면 신랑도 예복을 입어야하는데 말입니다.
생소했기 때문에 알린다면 가능성 있을 거라 판단해 대여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가족들도 반대했던 도전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죠. 이틀에 한 번 꼴로 잡지 인터뷰를 하고 여러 지사를 두며 크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Q. 예복 사업을 하며 위기는 없었나요?
한창 황금기를 보내고 있을 때, 드레스 샵에서 남성 예복을 공짜로 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저희를 찾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줄어들며 위기가 찾아왔죠. 3~4년은 침체기를 겪게 된 것 같습니다. 침체기에도 저는 ‘발전을 위한 시련이다’ 생각하고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요. 양복을 맞추는 사람에게 예복을 무료로 빌려주는 전략을 사용하며 다시 회생할 수 있었죠.
Q. 열정이 있었기에 한평생 한 길을 걸을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열정의 근원은?
내가 장인이다라는 자부심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요. 그 밑바탕에는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열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50년을 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맞춤 예복은 내가 어느 누구보다 열정 있다고 자부합니다.
저는 지금도 누가 나이를 물어보는 30대라고 답해요. 진짜 30대는 아니지만 30대라는 생각과 30대의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해야지 시장 흐름을 따라갈 수 있죠. 그런 열정으로 저는 지금까지 매일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아들이 뒤를 이어 슈트 브랜드를 런칭했다고 들었습니다.
보람이 느껴질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아들이 제 밑에서 3년을 배워서 이제 자기 브랜드를 런칭했는데요. 아무래도 저도 나이가 들기 때문에 젊은 혈기를 더해져야 더 오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빨리 들어오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제게 배워서 이제 자기 브랜드를 런칭하며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이 느껴집니다.
Q. 앞으로도 계속 현역으로 일할 계획이신가요?
제 체력이 되는 한, 그리고 제 옷을 찾는 손님들이 있는 한 계속 일할 생각입니다. 또 하나 3년 전부터 시작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요.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후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소년 소녀 가장에게 저희 손님의 이름으로 후원을 해주고 있는데요. 손님도 행복하고 불우한 이웃도 행복한. 권오수 클래식으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