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사실상 침몰하면서 한국의 해운·항만산업이 큰 타격을 받았지만 정부는 "원칙에 따랐을 뿐"이란 입장만 반복하며 현대상선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해운업계는 정부가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자화자찬만 늘어놓고 있다고 지적한다.
27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제8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해운 구조조정은) '소유주가 있는 기업은 유동성을 스스로 조달한다'는 분명한 원칙을 세우고 한진해운·현대상선에 동일하게 적용했다"고 밝혔다. 한진해운의 자구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유동성 지원을 해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 현대상선에 대해 정부는 대주주가 사재를 출연했고 알짜자산인 현대증권을 포기했다며 내년 4월 2M과 공동운항을 시작하면 아시아-미주 노선에서 점진적으로 점유율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정부의 발표에 대해 해운업계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전부터 물류대란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정부가 이를 무시했고, 결국 해운산업이 망가져서다. 해운업계의 한 원로는 "정부의 발표는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며 "구조조정을 하려면 장래를 내다보고 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한국 정부와 해운업계에 대한 해외 화주들의 신뢰가 무너진 것"이라며 "한진해운발 물류대란이 일어난 뒤 한국 정부와 해운업계를 믿을 수 없다는 해외 화주들의 불신은 아직도 전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한진해운은 운항을 할수록 손실이 쌓이는 취약한 선대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깎아내린 것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종길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는 "선대구조가 취약했다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전 한진해운의 점유율이 현대상선보다 높을 수 있었겠느냐"며 "용선료 역시 현대상선은 협상을 끝냈고, 한진해운은 협상 중이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진해운의 대주주의 정상화 의지가 부족했다는 정부의 지적에 대해서도 반론이 제기됐다. 한 교수는 "올해 한 해만 보면 현대그룹에서 현대상선 정상화를 위해 많은 유동성을 투입한 것처럼 보이지만 범위를 2~3년으로 넓히면 한진그룹도 에쓰오일 지분 포기, 자산 매입을 통한 유동성 지원 등을 했다"며 "오히려 한진해운의 대주주가 현대상선의 대주주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했다"고 평가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세계 수위권 정기 선사가 파산한 것은 한진해운이 처음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 해운업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대만 정부는 지난달 자국의
해운업계 관계자는 "원칙을 지켰다는 정부 입장엔 동의한다"면서도 "한국 해운산업의 장래나 구조조정으로 인한 부작용을 고려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는 데는 공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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