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소식이 전해진지 얼마 지나지 않은 17일 오전 7시30분.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사옥은 그야말로 '침묵' 그 자체였다. 출근하는 삼성그룹 직원들 표정에는 착잡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총수 부재는 회사생활에서 처음 겪는 일이라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감이 안오네요."
평소 출근길 커피를 사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던 사옥 지하 커피숍과 도너츠 가게 앞에도 한적했다.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 본사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권오현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사장단은 곧장 비상회의를 열어 향후 대책을 논의했지만 무거운 공기는 수원사업체 전체를 누르고 있었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의 직원은 "출근 버스 안에서 구속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며 "회사에서는 맡은 업무에만 충실하라고 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대학 졸업 직후부터 수십년 동안 삼성전자에 몸담고 있지만 이번처럼 분위기가 침울한 경우는 처음"이라며 "가뜩이나 전자제품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데 총수 부재 기간이 길어질 경우 타격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삼성그룹 고위임원도 "외부에서는 총수부재에 대비한 컨틴젼시 플랜을 가동할 것이라고들 하지만 그런 상황을 가정하질 않았기 때문에 솔직히 막막한 것이 사실"이라며 "총수 한 사람이 없다고 삼성이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기업 사정을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안타까워했다.
당장 몇개월간은 계열사 실적 변함없이 나오겠지만 그 이후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장기적인 전략과 과감한 투자결정은 총수의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고선 어렵다"며 "해외 국가정상과 기업인들을 직접 만나서 뛰는 총수가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경쟁력 차이는 2~3년뒤면 바로 드러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이날 "이재용 부회장 구속 이후 그룹의 경영형태를 어떤 식으로 바꿀지 현재로선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그룹 미래전략실이 이날 하루종일 회의를 열었지만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 방법에 대한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분간 삼성은 계열사별 전문경영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경영체제가 이끌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 현안은 대표이사들이 책임을 지고 해결하되 계열사간 의견 조율이 필요한 그룹 차원의 현안은 각 회사 대표가 모인 집단협의체에서 논의하는 형태다. 삼성은 지난 2008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태 이후에도 각 계열사 사장들이 책임지고 회사를 이끌고 이들이 모인 사장단협의회를 구성해 그룹 의사 결정을 맡겼다.
이같은 전문경영인 중심의 경영방식에는 맹점이 있다. 중장기 전략을 세우고 책임질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삼성 특유의 스피드 경영에도 큰 차질이 불가피하다.
삼성 특검이 있었던 2008년 당시 사장단협의회는 미래사업에 대한 중요한 투자 결정을 제때 내리지못해 태양광, LED 등의 사업을 경쟁업체들에게 빼앗기는 단초를 제공했다. 2010년 그룹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미래전략실이 다시 만들어진 이유다.
삼성 관계자는 "80억 달러에 사들이기로 한 미국의 전장 전문기업 하만 사례와 같은 대규모 인수합병(M&A)이나 천문학적인 손실이 따르는 갤럭시노트7의 단종 결정 등은 이 부회장이 빠진 삼성 수뇌부에게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기존의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미전실)의 역할도 기대할 수 없다. 지난해 12월 이 부회장이 미전실 해체를 선언한 상황에서 미전실이 다시 전면에 나설 경우 여론의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이 모두 피의자로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최 부회장과 장 사장이 사태 수습이 끝난 뒤 용퇴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삼성 관계자는 "2008년 전략기획실이 해체될 때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 일체의 직을 사임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설명했다.
외신들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그룹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룹 오너 일가인데다 이 사장에 대해 대중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좋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삼성은 "주요 계열사에 대한 지분구조 등을 고려하면 이부진 사장이 그룹의 중심이 되기는 불가능하다"라며 "그런 얘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처럼 강력한 총수의 리더십에 의해 움직이던 조직은 총수가 빠진 자리를 메우기가 더 힘들다"라며 "특히 이번처럼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지면 혼란을 수습하는데만도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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