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론이 반쪽나면 가뜩이나 어려운데 경제 역량도 반감될 수 밖에 없지요. 반토막 났던 국론이 하나로 모아지는 계기가 되길 바랄 따름입니다."(10대 그룹 임원 L씨)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선고를 내리자 재계는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며 "이제 국정 공백을 매듭짓고 경제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경제단체들은 평소 정치적인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경우에는 논평을 자제했다. 하지만 이날 탄핵 인용 소식 뒤에는 일제히 성명을 내놨다. 현재 재계를 둘러싼 상황이 녹록치 않아서다. 또 국내 정치적 혼란이 헌재 판결로 일단락될 수 있겠지만 재계의 고난은 한동안 지속될 수 밖에 없다는 불안감도 깔려있다.
재계에서는 "대선 국면에 포퓰리즘 공약 등 경제계 역풍이 강해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시각도 나왔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등으로 인해 홍역을 치른 기업들은 "재계 입장에선 강제로 돈을 내고도 피해자가 아닌 공범으로 분류되는 상황이 억울하지만 말도 못하는 상황이었다"며 "기업들에 대한 무리한 수사가 더 이상은 확대되지 않기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대한상의는 "정치권은 변화에 대한 열망을 에너지 삼아 대한민국을 보다 공정하고, 역동적이며, 안전망을 갖춘 선진 국가로 만들 비전을 제시하고,국가개혁의 리더십을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모집을 주도한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성명을 내놨다. 전경련은 "경제 주체 불안 심리를 키우는 정치적 리스크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경제살리기와 민생안정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라고 평했다. 이어 "경제계도 이번 사태를 값비싼 교훈으로 삼아 어려운 여건이지만, 적극적인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앞장 서겠다"고 다짐했다.
한국무역협회는 공식 논평을 통해 "대외적으로는 미 트럼프 행정부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과의 정치, 외교 리스크가 확대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며 "기업도 도전과 혁신을 통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위기를 기회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이날 성명에서 "이제는 통합이다. 한국사회가 처한 현실을 냉정히 인식하고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모아 위기 극복을 위해 온 국민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밝혔다. 중기중앙회는 또 "지금 대한민국은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었고 내수침체가 심화되고 있으며, 전세계는 보호무역주의 확산되는 등 내우외환의 위기를 겪고 있다"며 "상황이 어렵지만 온 국민이 지혜를 모아 오늘의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기업계는 이와 함께 여야 정치권이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쟁은 중단하고 초당적으로 협력해 사회통합에 앞장서고, 안보 위기 대처와 경제안정을 위해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외국계 기업들도 한국 정국의 안정을 기대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은 "한국이 조속히 안정화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며 "암참은 차기 대통령과 긴밀히 협업해 한미 양국이 '윈윈'하는 경제 파트너십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단체들의 성명 속에는 재계의 어려움이 한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염려가 깔려있다 재계 관계자는 "탄핵 정국이 시작된 이후 정부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되면서 우리 기업들은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진 것이 현실"이라며 "국내, 해외에서 얻어 맞기만 하는 상황에서 하소연할 곳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현 상황이 단기간에 개선되기 힘들다는 점이다.
재계는 정치권이 곧바로 대선 모드에 돌입하며 반기업 정서 여론에 편승해 '기업 때리기'에 나서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4대 그룹 관계자는 "선거 분위기 속에서 상법개정안이 처리될 가능성도 높은데다 검찰 수사 역시 기업들 입장에서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우려했다.
또 정부가
[서찬동 기자 / 정욱 기자 / 김정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