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욱 해브앤비 대표(41)의 서울 역삼동 집무실에는 독특한 그림들이 걸려 있다. 고요한 물가를 그린 수채화 속 하늘에서 분홍색 당나귀가 날고 있고, 평온한 전원 풍경에서 용이 불을 내뿜고 있다. 하늘색 구두에 노란 양말을 신은 이 대표는 "외국 마켓에서 산 그림들인데 정말 기발하고 재미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대표의 호기심과 역발상이 화장품 브랜드 '닥트자르트'(Dr. Jart+) 대박의 힘이다. 지난 2012년 연고처럼 생긴 세라마이딘 크림(고보습 제품)은 수많은 화장품 업체들의 허를 찔렀다. 소비자들은 '약이야, 화장품이야'고 궁금해하며 피부과 약처럼 신뢰가 가는 이 크림에 지갑을 열었다. 세라마이딘 크림을 화방 물감처럼 배열하는 진열 방식도 남달랐다.
이 대표는 "보다 전문적이고 의학적인 화장품 느낌을 주고 싶었다"며 "남들이 안 했던 것에 매력을 느낀다.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와 메시지를 줄 것인지, 어떤 화장품을 만들고 어떤 용기에 담을 것인지 차별화된 해석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히트 제품을 음반에 비유했다. 세라마이딘 크림이 1집 앨범이라면, 2015년 출시된 더마스크(보습 마스크팩)는 2집, 지난해 나온 시카페어(피부 회복) 크림은 3집 앨범이라고 했다. 그는 "국민가수가 되려면 5집 이상 사랑받아야 되지 않겠느냐"며 "작품 내듯이 혼신을 다해 제품을 만든다. 어디 내놔도 당당할 만큼 치밀하게 제조한다"고 말했다. 4집 음반은 뭐냐고 묻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클렌징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답했다.
차별화된 경영 덕분에 닥터자르트는 2005년 론칭 후 11년 만에 매출액 2371억원대(2016년)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지난 2006년 매출액이 4억9400만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비약적인 성장이다. 성공 비결은 '3D경영'으로 요약할 수 있다. 디퍼런트(Different), 디테일(Detail), 디자인(Design) 3박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다음이 기대되는 화장품 기업 반열에 올랐다.
그는 경쟁사들이 중국 시장에 매달릴 때 뷰티 산업의 심장부인 미국과 유럽 시장을 개척해 31개국에 진출했다. 2011년 제품력과 브랜드 정체성을 높게 평가받아 미국 화장품 편집숍 세포라 입점에 성공했다. 명품회사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그룹(LVMH)이 운영하는 글로벌 화장품 편집매장이다. 처음에 닥터자르트는 2개 품목으로 세포라 매장 10곳에 입점했는데 가파른 매출 상승에 힘입어 지금은 96개 품목을 매장 868여곳에서 판매하게 됐다. 매년 2배 이상 꾸준한 성장률을 기록하며 세포라 내에서 연간 2000만달러(224억원) 매출을 기록중이다.
그는 닥터자르트를 알리는 현지화 전략으로 뉴욕 패션위크를 선택했다. 2012년부터 매년 유명 패션쇼를 통해 자사 제품을 소개했다. 그 덕분에 미국 '보그'와 '인스타일' 등 주요 패션 잡지 뿐만 아니라 NBC 인기 프로그램에 주목할만한 제품으로 조명됐다.
"메이크업 제품만 주로 참가하는 뉴욕 패션위크에 스킨케어로는 처음 접근해 인지도를 높였어요. 이제 닥터자르트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스킨케어 브랜드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어요. 얼마전 만난 미국 세포라 관계자가 '우리에게 닥터자르트는 이노베이션이다. 다음 트렌드를 공유해달라'고 말했죠. 저희가 미국 뷰티 시장에 없던 비비크림, 마스크팩 시트 카테고리 만들었어요."
지난해부터는 유럽 시장을 공략해 14개국 세포라 매장 798곳 외에 독일 유통 체인 두글라스 115개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몰에 론칭했다. 유럽 시장에서 시트 마스크 제품이 도입 단계여서 전망이 밝다. 유럽과 동시에 중동 5개국 세포라 매장 20곳에 입점해 영토를 넓혔다. 중동 여성들이 히잡이나 차도르를 쓰는 탓에 피부 트러블이 많은 편이어서 스킨케어 제품 반응이 좋다.
세상을 알고 싶어 사업을 시작했다는 이 대표는 "아프리카를 제외하고 세포라 통해 전세계 판매 거점을 마련했다"며 "조만간 멕시코를 중심으로 남미 시장에 진출해 한국 화장품의 힘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닥터자르트는 제품 마다 각기 다른 용기·포장·디자인업체와 거래한다. 직원들은 피곤하지만 소비자에
인터뷰 내내 그가 강조한 대로 다음 신제품이 기대되는 브랜드가 바로 닥터자르트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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