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국가인 덴마크는 1980년대 연평균 1.9%에 불과한 낮은 성장률로 시름을 앓았다. 이에 덴마크는 1990년대 이른바 '황금 삼각형'(노동-복지-적극적 고용정책을 통한 성장)을 내세우며 노동개혁을 추진했다.
핵심 골자는 세가지다. 우선 해고, 직무전환 등을 자유롭게 해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든다. 대신 해고당한 근로자가 생계에 문제가 없게끔 직전 임금의 90%를 실업급여로 보장한다. 아울러 정부는 직업훈련 등을 상시화해서 이들 해고자가 곧바로 다른 직장으로 이직이 가능하도록 지원한다. 노동(해고 등이 자유로운 노동시장)과 복지(실업급여 등 사회안전망 확충)라는 두 축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성과 안전성을 끌어올린 뒤 적극적인 취업알선과 직업훈련 등을 통해 가계소득을 높여 성장을 유도한 것이다. 덕분에 덴마크는 1990년대 연평균 2.4% 성장률을 기록했고 특히 개혁이 성공한 90년대 중후반은 3%대 성장을 기록했다.
김진표 국가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3일 기자 브리핑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경제·사회정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소득 주도 성장이다. 성장과 고용, 복지가 함께 가는 황금 삼각형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보수정권이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세운다) 혹은 부채주도 성장(부동산 규제 풀어 내수 부양)을 내세웠지만 성장률이 오히려 2%대로 하락한 것을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는 고용과 복지라는 두 축을 활용해 가계소득을 늘려 '성장'을 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운 것이다. 또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보수정권 때는 기획재정부가 힘이 쎄서 '효율성' 이 정책 입안의 첫번째 고려사항이었던 적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고용, 복지, 환경, 형평성 등도 고려해 중소기업 및 가계소득 증대에 주안점을 두고 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같은 국가기획위의 황금삼각형은 이같은 덴마크 모델과 상당히 겹친다. 앞서 보았듯이 덴마크 모델은 사회안전망(복지)과 직업교육 취업알선 등을 통한 소득 증대(성장)을 주로 추구했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4일 "이번 국가기획자문위원회에서 발표한 모델은 덴마크의 황금 삼각형 모델을 일부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사회안전망 강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후보시절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등 특수형태근로자(1인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실업급여 수급일수 등을 확대하는 안이 대표적인 예다. 아울러 노동시장으로의 진입도 촉진한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또한 새일센터 등을 통해 경력단절여성에 대한 취업지원을 활성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해고자는 국가에서 일정 기간 동안 생계를 책임지는 한편 이들이 다시 근로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것이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확충 혹은 근로시간 단축 등을 통한 50만개 일자리 창출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한다. 노동담당 정부 관계자는 "덴마크 등 선진국은 사회안전망이 두터워서 근로자가 해고를 당해도 파업을 심하게 하진 않는 편"이라면서 "반면 우리는 대기업 근로자의 경우 한 번 해고 당하면 중소기업에 취업해도 거의 절반에 가까운 임금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해고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래서 강경투쟁에 나서는 비율이 높은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보고서에 따르면 덴마크의 경우 매년 근로자의 4분의 1이 해고를 당하지만 사회안전망과 재취업 지원이 잘 구축되어 있어 근로자의 해고 불안전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았다.
다만 이번 국가기획위 발표는 덴마크 모델 중 또 다른 한축을 담당하는 노동(노동시장 유연화) 부분이 빠져 있어 반쪽짜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덴마크의 경우 근로자 안전성(사회안전망과 재취업 지원)을 확보하는 동시에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해고 등을 자유화시켰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고용과 노동을 언급하곤 있지만 대부분이 신규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노동시장 유연화와 관련된 이렇다할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진보정권이어서 유연성 증진 이슈가 후순위로 밀리는 듯 하다"면서 "하지만 유연성과 안전성이 결합한 유연안전성이란 개념이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는 만큼 양자를 같이 보면서 정책을 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재계는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키는 해고 확대보다는 근로시간(유연근무제 도입), 임금체계(경직적 호봉제보다는 경영상황에 맞는 성과연봉제) 등의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청와대 비서동인 여민관으로 옮긴 87m²크기의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상황판(75인치 모니터 2대)을 설치하고 개별 기업과 공공기관별 일자리 현황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사용현황을 수시로 점검하기로 했다. 취임 첫날 이같은 내용의 제 1호 업무지시를 내린 뒤 2주일만에 공약을 이행한 것이다. 일자리 창출과 격차 해소와 관련된 강력한 실천 의지를 보였다는 평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일자리 상황판엔 일자리지표 14개, 노동시장과 밀접한 경제지표 4개 등 총 18개 항목을 담았다. 4개 지표는 고용률, 취업자수, 실업률, 청년실업률이며 일자리 창출(취업자 증감, 신설법인 수 등), 일자리 격차(저임금 근로자, 임금 격차, 비정규직 현황 등), 경제지표(경제성장률,
문 대통령은 "청년 고용률이 OECD 평균보다 거의 10%포인트 낮아서 청년 실업난이 대단히 심각한 상태"라며 "일자리위원회는 일자리 정책이 최고의 성장전략이고 양극화 해소 정책이며 복지정책이란 점을 명심해달라"고 당부했다.
[강계만 기자 /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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