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완주군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북분원의 한 연구실. 유리로 덮혀있는 공간 속에 영화에서나 볼법한 고압 레이저 장비가 놓여 있었다. 수만 기압 이상의 고압환경을 만든 뒤 레이저를 쏘아 상온에서는 만들 수 없는 물질을 만드는 곳이다. KIST는 이곳에서 미국항공우주국(NASA), 캐나다 NRC(캐나다연구회)와 함께 '질화붕소(BN)'를 만들고 있다. 이상현 KIST 양자응용복합소재연구센터장은 "최근 인류를 화성으로 보내기 위한 프로젝트가 가동됐다"며 "인류가 화성에 가기 위해서는 수년 동안 우주선 생활을 해야 하는데 BN이 우주 방사선을 막는데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붕소는 중성자를 잘 흡수하는 성질을 바탕으로 원자력발전소에 활용되고 있다. 원자로 안에 붕소로 만든 막대인 제어봉을 넣으면 중성자가 급격히 줄면서 핵분열이 멈춘다. 원자로를 가동할 때는 핵연료에서 제어봉을 빼서 핵분열을 유도한다.. 정상 운전 중에는 냉각수에 녹아 있는 붕소의 농도를 조절해 중성자 수를 제어하기도 한다. 이상현 센터장은 "중성자 역시 방사성 물질"이라며 "붕소가 중성자를 흡수하는 능력은 이미 알려졌지만 이를 활용해 우주선이나 우주복에 활용하는 시도는 약 1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기존 우주복은 상당히 두껍다. 자유롭게 움직이는데 한계가 있다. 우주 유영을 하기 위해서 우주인들은 수개월동안 우주복을 입고 연습을 해야만 한다. 우주복이 두꺼운 이유는 역시 우주 방사선 때문이다. 우주에는 중성자 뿐 아니라 감마선, 베타선 등 방사선 천국이다. 이를 막기 위해 우주복은 고어텍스, 알루미늄, 네오프렌, 우레탄 등 수십층의 물질로 만들어졌다. 이상현 센터장은 "우주복의 무게는 약 5kg으로 유연성과 차폐성에 한계가 있다"며 "방사성 세슘 기준으로 약 30%만 차폐가 가능할 뿐 아니라 두께는 1.5cm나 될 정도로 두껍다"고 말했다. 얇은 우주복도 존재하지만 이는 한정된 방사선만 차폐할 뿐이다.
10년 전부터 NASA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물질이 바로 BN이다. BN은 평면 소재인 그래핀의 탄소를 붕소와 질소로 치환한 소재다. BN을 평면과 같은 형태로 만들기 때문에 이를 BN나노튜브(BNNT)라고 부르기도 한다. 양철민 KIST 다기능구조용복합소재연구센터장은 "BNNT는 붕소와 질소 원자가 벌집 모양 구조를 이루며 튜브 형태를 띄고 있다"며 "열전도도가 높고 900도의 고온에서도 타지 않고 견딜 뿐 아니라 방사선 차폐 기능이 뛰어나 원자력 분야 및 우주항공 분야에서 널리 쓰일 것"으로 기대했다.
NASA는 "BNNT는 우주복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유연할 뿐 아니라 화성에서 인류가 작업을 할 때 사용할 수 있을만큼 방사능 차폐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하고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2025년, 화성에 거주하는 우주인들은 모두 BN으로 만든 우주복을 입고 생활할 가능성이 높다.
우주환경에서는 기존 우주복이 견딜 수 없을 만큼의 높은 방사선에 노출도는 경우가 많다. 1972년 8월 7일, 태양에서 이례적으로 큰 태양폭풍이 발생해 상당히 많은 방사성 입자들이 우주 공간으로 방출됐다. NASA에 따르면 아폴로 16호에 있던 승무원들이 폭발 직전 지구로 귀환했는데 만약 우주 공간에 있었다면 방사능에 노출돼 심각한 상황에 처했을 가능성이 높다. 올해초 KIST는 BNNT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을 개발,
[완주 =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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