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제약과 메디톡스 간 보툴리눔톡신(일명 보톡스) 균주 출처 논쟁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한국 보건의료 분야가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보툴리눔톡신은 신경독 성분의 바이오의약품이다. 다국적 제약사 엘러간이 출시한 '보톡스' 제품이 가장 유명하다. 근육에 수축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물질을 차단해 해당 부위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낸다. 이것이 미간주름 개선과 같은 미용목적으로 많이 쓰이는 이유다.
이 독성물질은 특허기간이 만료됐지만, 물질을 만드는 균주를 구하는 게 어려워 세계적으로 생산하는 제약사는 소수에 불과하다. 보툴리눔톡신 제품으로 메디톡스는 '메디톡신' 시리즈를, 대웅제약은 '나보타' 시리즈를 각각 제조·판매하고 있다.
20일 의료·제약업계에 따르면 대웅제약이 자사의 균주를 도용해 나보타를 만들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메디톡스가 현재 한국에서 대웅제약을 상대로 한 소송을 준비하는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법원이 메디톡스가 제기한 민사소송에 대해 미국에서 진행하는 게 적절치 않다며 반려한 데 따른 것이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대웅제약에 제기한 균주 도용 의혹에 대한 정황을 더 확보해 경찰에 정식으로 수사의뢰를 했고, 조만간 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메디톡스가 접수한 진정을 '혐의 없음'으로 종결한 바 있다.
의료계는 대웅제약과 메디톡스가 벌이는 보툴리눔톡신 균주 출처 논쟁이 지속되면서 한국의 보건의료 시스템의 후진적 한계가 외부로 확대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1g만으로 100만명 넘는 사람을 치사시킬 수 있는 보툴리눔톡신의 균주를 대웅제약이 어떻게 구했는지 불분명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의 학술간사를 맡고 있는 조유희 차의과대 교수는 "만약 대웅제약의 주장대로 국내에서 보툴리눔톡신 균주를 발견해 분리한 것이라면 보건당국이 국내 환경에서 어떻게 치명적인 독성균이 생겼는지 역학조사를 통해 밝혀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메디톡스의 주장대로 대웅제약이 균주를 도용한 것이라면 맹독균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도둑맞은 메디톡스 역시 비판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보툴리눔톡신 제품을 만드는 제약사가 한국처럼 여러개인 나라도 드물다며 여러 회사가 균주를 갖고 있다는 것은 감염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라고 우려하고 "대웅제약과 메디톡스의 보툴리눔톡신 균주 출처 논쟁이 회자될수록 한국 보건의료시스템이 부실했던 사실이 함께 주목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빨리 이 논쟁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사의 보툴리눔톡신 균주의 염기서열을 전문가들이 비교하면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균주를 도용한 것인지, 국내에서 발견한 것인지 결론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메디톡스 역시 같은 제안을 대웅제약에 한 바 있다. 하지만 대웅제약 측은 염기서열을 공개할 의무도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또 회사 입장에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나보타에 대한 승인을 받아 미국에 진출하는 게 우선이라고도 말했다.
제약업계 안팎에서는 대웅제약이 전체 염기서열 공개를 거부하는 건 떳떳하지 못해서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염기서열을 분석해 공개하는 게 특별히 힘든 일도 아니고 전체 염기서열을 공개해도 보툴리눔톡신 균주를 보유한 회사가 손해를 볼 가능성은 크지 않아서다.
먼저 전체 염기서열 정보가 공개돼도 보툴리눔톡신 균주를 재조합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학계는 지적한다.
조 교수는 "미국의 한 연구팀이 약 90만개로 구성된 염기서열 정보만 갖고 유전자를 만들어낸 사례가 있다"면서도 "300만여개로 구성된 보툴리눔톡신 균주를 염기서열 정보만 갖고 만드는 것은 현재 기술 수준에선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균주의 염기서열 정보는 바이오의약품 생산 과정의 정보로서 향후 공정 혁신의 실마리가 될 수 있지만 아주 먼 훗날의 먼 이야기이며 오히려 인류의 복지 차원에서 염기서열 정보
공개된 염기서열 정보는 학계 입장에서는 학문적 자산이 될 수 있다.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 공개하는 일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조 교수는 "100만원 내외의 비용을 들이면 1~2주 안에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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