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업계가 마케팅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기업간(B2B) 거래의 특성 상 철강시장에서는 회사 이름이 브랜드로 받아들여졌지만, 최근 몇 년새 철강업체들은 개별 제품 브랜드를 잇따라 론칭했다. 또 업계 맏형인 포스코를 중심으로 고부가 제품의 기술영업도 고도화되고 있다.
철강업계의 영업 강화는 글로벌 철강시장의 경쟁이 다시 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지금 당장은 중국의 철강산업 구조조정으로 반사이익을 보고 있지만, 향후 중국 내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 질적으로 성장한 중국업체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6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이 내진용 철강재 브랜드 '에이치코어(H CORE)'를 론칭하면서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 등 고로 3사가 모두 개별 제품 브랜드를 운용하게 됐다. 에이치코어는 '현대제철(H)이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만들어 나가는 중심(CORE)이 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8월 초고장력강판 브랜드 '기가스틸'을 내놨다. 기가스틸은 양쪽에서 잡아당겨도 강판이 찢어지지 않는 인장강도가 1기가파스칼(GPa) 이상이라는 뜻이다. 포스코는 지난 5월 기가스틸을 프레임에 적용한 쌍용차 G4렉스턴을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앞마당에 전시하고 프로모션에 나섰다. 앞서 쌍용차 G4렉스턴 개발 단계에서부터 포스코는 최적 강종을 제안하고, 제안한 강종을 가공하는 기술도 지원했다.
국내 철강업계에서 동국제강이 가장 먼저 개별 제품 브랜드를 론칭했다. 지난 2011년 건설용 컬러강판에 '럭스틸'이라는, 2013년 가전제품용 컬러강판에 '앱스틸'이라는 브랜드를 각각 붙였다.
철강·화학 등 소재기업이 제품 브랜드를 구축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구매사와 처음 거래관계를 맺을 때 가격·성능의 최적점을 찾아두면 구매사 입장에서 공급선을 바꾸는 게 번거로워서다.
하지만 지난해 초까지 중국산 철강 제품의 과다 공급으로 어려움을 겪은 바 있는 철강업체들은 중국 철강업계가 구조조정을 하는 동안 영업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마친 중국 업체들이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 철강업계가 무턱대고 생산량을 늘린 뒤 남는 물량을 글로벌 시장에 밀어내면서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자 철강산업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중국 국무원은 올해 상반기까지 1억2000만t 규모의 철강 생산설비를 폐쇄했다고 밝혔다. 1년여만에 포스코 규모의 두배가 넘는 철강생산설비가 사라진 것이다.
중국 업계의 구조조정으로 국내 철강업체들의 실적도 회복됐다. 포스코는 올해 들어 매 분기 1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중이다. 1분기에는 1조3650억원, 2분기에는 9791억원, 3분기에는 1조1257억원을 각각 남겼다. 현대제철도 중국산 봉형강류 수입이 줄면서 지난 3분기 사상 최대인 4조820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문제는 중국의 구조조정이 끝난 다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성봉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중국 정부는 향후 양보다는 질에 집중할 계획으로 철강산업의 집중도를 높이고 기술 개발 등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주력할 전망"이라며 "지난 2015년 35%에 불과했던 상위 10개 철강사들의 시장 점유율을 오는 2025년 60%까지 끌어올리고, 연간 5000만t 이상의 생산능력을 보유한 글로벌 철강회사 3~5곳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해 말 바오산강철과 우한강철의 합병으로 단숨에 세계 조강생산량 순위 2위로 부상한 바오우강철그룹은 고부가 제품인 자동차용 강판 생산량의 200만t 증설을 추진
철강업계 관계자는 "고부가 제품을 통해 수익성을 높이는 건 이미 세계 철강업계의 트렌드"라며 "기술력과 함께 영업역량도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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