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과거 우리나라 은행의 북한 진출 사례에 관심이 쏠립니다.
남북 간 긴장이 완화되면서 교류가 활성화될 때 국내 은행이 북한으로 가서 이런 남북한 교류를 지원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분단 이후 국내 은행으로서 처음으로 북한에 진출한 은행은 옛 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입니다.
1997년 12월 함경남도 신포시 금호지구에 금호출장소를 내며 외환은행이 북한 땅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금호출장소는 컨테이너를 이용해 지어진 건물로, 크기는 22평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차장급, 과장급 직원과 행원 등 3명이 상주했습니다.
금호출장소는 당시 대북 경수로사업을 지원하기 위해서 설립됐습니다.
북측의 이른바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고조된 1차 북핵 위기가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합의로 해소되면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대북 경수로사업이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 제조에 이용될 소지가 큰 영변 흑연 원자를 포기하는 대신 핵무기 제조가 어려운 경수로를 금호지구에 지어주기로 한 것입니다.
외환은행이 한국 노동자들의 임금 송금 등 경수로사업관 관련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이곳에 출장소를 설치했습니다.
금호출장소는 대북 경수로사업이 중단됨에 따라 2006년 1월 문을 닫았습니다.
뒤이어 북한에 들어선 국내 점포는 개성공업지구에 자리 잡은 우리은행의 개성공단지점입니다.
남북 경협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개성공단은 2003년부터 단지 개발에 들어가 2004년 시범단지가 분양됐습니다. 그해 11월 시범단지에 입주한 리빙아트가 개성공단 첫 시제품인 '통일냄비'를 생산했습니다.
우리은행 개성공단지점이 영업을 개시한 때가 이 시기입니다.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건물에 입주한 개성공단지점은 개점 당시 지점장과 차·과장급 등 모두 3명으로 출발했으나 이후 우리은행 측 3명과 현지 직원 4명 등 모두 7명으로 근무인력이 늘어났습니다.
친가와 처가의 고향이 모두 북한이었던 김기홍 씨가 초대 지점장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개성공단지점은 여신, 수신업무와 신용장, 외환 업무 등 국내에서 취급하는 모든 금융서비스를 개성공업지구 내 입주기업 123개사에 제공했습니다.
북한 금강산관광이 활성화됨에 따라 금강산관광지에도 국내 은행이 진출했습니다. 농협의 금강산지점이 그 주인공입니다.
금강산지점은 2006년 8월 금강산지구 내 온정각 옆 부지에 2층(60평) 건물로 신축됐습니다. 농협에서 파견한 3명과 조선족 3명이 그해 10월부터 이곳에서 일했습니다.
금강산을 찾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환전 업무가 주된 일이었습니다. 금강산특구 내 상주한 한국인들이 예금한 돈을 맡거나 이를 담보로 대출해주는 일도 했습니다.
전산이 남측 본점과 연결되지 않은 탓에 남쪽으로 송금할 일이 있으면 금강산지점 자체 전산에 송금 내역을 입력하고서 관련 정보를 팩스로 보내 국내에서 처리하는 방식으로 송금업무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내 은행의 북한 점포도 하나둘 철수하게 됐습니다.
2008년 7월 고(故) 박왕자 씨 피격 사망 사건을 계기로 금강산관광이 중단됨에 따라 농협의 금강산지점이 2009년 7월 영업을 중단했습니다.
우리은행 개성공단지점은 2013년 4월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철수했다가 그해 9월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2016년 2월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결정으로 재차 철수했습니다.
영업은 국내로 돌아와서도 이어갔습니다. 서울 중구 본점 지하 1층에 임시영업소를 마련해 입주기업 사후관리를 해오고 있습니다.
개성공단지점도 전산이 별도로 운영된 탓에 입주기업의 금융정보가 개성공단지점 전산에만 남아 있어서입니다.
지점장과 과장급 직원 등 2명이 임시영업소를 찾는 입주기업 관계자들을 상
우리은행 관계자는 "개성공단 영업이 재개돼 입주기업들이 다시 영업하게 되면 우리은행 개성지점도 입주기업들의 편의를 위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2000년부터 금강산지구에서 국민·외환·BC카드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신용카드 서비스를 제공해왔으나 역시 금강산관광이 막히면서 관련 업무를 중단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