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이용해 잉크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새로운 프린팅 기술이 나왔다. 기존 잉크젯 프린터를 능가할 전례 없는 정확도로 일반 종이뿐 아니라 바이오 의약품, 화장품, 식품 등의 맞춤형 인쇄에 활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최근 하버드대 존폴슨공대 및 응용대학(SEAS)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드'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음향 효과를 활용해 수없이 많은 종류의 물질들을 주문 즉시(on-demand) 인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현재 프린팅 기술은 종이 인쇄, 약물 전달을 위한 마이크로 캡슐 제작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액상 잉크를 쓰고 있다. 잉크젯 프린터는 이런 액체를 패턴화하는 가장 일반적인 기술이다.
문제는 3D프린터가 출현하고 인쇄 대상이 다양해지면서 잉크의 종류가 진화하고 있지만, 프린팅 기술은 멈춰서 있다는 것이었다. 기존 잉크젯 프린터는 물보다 약 10배 점성이 높은 액체에만 적합하다. 바이오제약이나 바이오프린팅 분야에 쓰이는 바이오폴리머나 세포 함유 용액의 경우 물보다 점성이 최소 100배가 넘고, 당류의 일부 생체 고분자는 물보다 2만5000배나 더 끈적끈적하기 때문에 잉크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액체의 점성은 온도나 성분 등에 따라 급격하게 변하기 때문에 액상 크기를 정밀하게 통제하기도쉽지 않다.
논문 주저자인 다니엘 포레스티 하버드대 연구원은 "우리의 목표는 잉크의 점성이라는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 물성과 관계 없이 인쇄할 수 있는 독립적인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연구진이 몰두한 것은 바로 '음파'였다. 중력만 가지고는 수도꼭지나 노즐 등에서 떨어지는 액체 방울의 크기를 통제하기가 어렵고 점성에 의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가령 호주 퀸즈랜드대학에서 1927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고전 '피치드랍(pitch-drop)' 실험에 따르면 물보다 점성이 2000억배 높은 '피치'(원유나 콜타르를 증류했을 때 남는 흑색의 고형 찌꺼기)의 경우 한 방울이 떨어지는 데 약 10년이 걸린다.
방울이 더 잘 떨어지도록 제어하기 위해 연구팀은 음향 효과를 주기 시작했다. 중력만으로는 힘에 한계가 있을 때 음파를 활용해 낙하를 빠르게 하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좁은 음역대의 음파장을 만들기 위해 서브파장의 음향 공진기를 제작했고, 일반적인 중력의 100배에 달하는 힘이 잉크를 끌어당기도록 만들었다. 이는 태양 표면에서 작용하는 중력의 4배가 넘는다.
이 힘을 조절하면 잉크 종류가 무엇이든 간에 정확한 양의 액체를 프린터 노즐에서 분사할 수 있기 때문에 정교한 인쇄가 가능하다. 물성과 상관 없이 음파 진폭을 높이면, 액상의 크기는 작아진다. 연구 결과 벌꿀부터 줄기세포, 생체 고분자, 광학 수지, 액체 금속에 이르는 광범위한 잉크 재료에 이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음파가 액체 방울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세포나 단백질 등 민감한 생화학 물질에도 안전하게 적용할 수 있었다.
루이스 교수는 "이 기술은 바이오제약 산업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나아가 다수 산업의 주축의 플랫폼으로 성장할 것으로 믿는다"고 내다봤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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