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포스트잇은 하나 둘씩 쌓여갔고, 글솜씨를 더했더니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이제는 유튜브를 통해 '도시의 사랑방'이 된 편의점의 매력을 전할 계획이다.
서울 종로구 CU창덕궁돌담길점에서 만난 강경란(54) 점주는 같은 가맹점주들 사이에서도 '글 쓰는 점주'로 유명하다. 독서지도자와 동화연구가로 활동하며 쌓아온 '글발'과 '말발'로 사보(社報)에도 여러차례 등장했다. 2017년에는 1년 반동안 '초짜 점주'로서 바라본 편의점의 모습을 매장 한 켠에서 밤마다 써내려간 에세이 <달콤한 외상>으로 작가의 세계에 입문했다.
강 점주는 "편의점주들도 '제2의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자부했다. 무료한 매장에서 늘 계산만 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기엔 아쉽다는 의미다. 그는 "중년의 나이에 편의점주에 새롭게 도전하는 게 두려웠다. 기계치여서 더욱 그랬다. 아마 모든 편의점주들이 이같은 고충을 느꼈을 것"이라며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에 도전함으로써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 점주는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매일 마주치는 손님들의 상품평을 기억했다가 본사에 개선안을 제안하면 한 명의 마케터가 될 수 있는 것. 편의점 생활에서 쌓은 노하우를 발전시켜도 재능으로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 CU창덕궁돌담길점 강경란 점주. |
강 점주가 편의점을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고자 결심한 건 노숙인때문이다. 그는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때로는 골칫덩어리, 때로는 친구같은 노숙인을 정말 많이 만난다"며 "다 한 때는 잘 나갔던 가장이자 누군가의 자식였다고 한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듯이 함부로 이들에 대해 말하는 편견을 깨고자 글을 쓰기로 작정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책에 늘 따듯한 에피소드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몇 년은 묵은 된장이 몸 구석구석에 파고든 것 같은' 노숙자와 친해졌지만 이 모든건 향후 외상을 위한 밑그림이었다는 걸 알게됐을 때의 허탈함, 계산을 하기도 전에 먼저 아이스크림을 베어물던 손님이 2층 온 사방에 남기고 간 흔적을 발견했을 때의 분노도 언젠가 한번쯤 느껴봤을 법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강 점주는 "편의점은 그 자체로 무한한 글감"이라며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 손님들과 스치는 인연도 다 글이 된다. 하나의 '도시의 사랑방'이다. 사람과 만나고 소통하는 일들이 모두의 가슴속에 남는다고 생각하면 쉽사리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코 부유한 편의점주의 여유로움이 아니다. 강 점주는 여느 자영업자와 마찬가지로 하루의 대부분을 매장에서 보낸다. 지난해 함께 일하던 남편이 쓰러진 뒤부터는 아르바이트생을 추가로 고용하고 병원과 매장을 오간다. 최저임금 때문에 괴로움을 느끼는 점주기도 하다.
남편의 건강이 좋아지면 유튜버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채널 이름도 '수필 읽어주는 점주'로 정해놨다. 편의점 카운터 한 구석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손님을 맞는 또 다시 이중생활에 도전하는 셈이다. 강 점주는 "편의점은 저에게 '인생 학교'"라며 "현실의 고됨을 미래의 꿈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CU창덕궁돌담길 2층에는 창덕궁 기와가 한 눈에
[디지털뉴스국 신미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