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흔한 인사말에 이승환은 “잔잔하게 지내고 있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잔잔해졌다는 말은 잔잔해짐 전에 산란했던 마음을 간접적으로 설명한다.
“솔직히 말하면 지난해 전국투어가 흥행에서 처참히 실패했어요.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에요. 강아지를 두 마리나 샀는걸요.(웃음) 미장센도 좋고 예술적인 풍취도 있는 공연들은 외면하더라고요. 제가 세간의 시선에서 자꾸 벗어나고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도 이유겠죠.”자신의 치명적인 실패담을 설명 하면서도 특유의 위트는 여전하다. 실제로 이승환은 자조 섞인 농담과 함께 ‘입문자용 공연’을 해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의 공연은 여전히 새로움 속에 깨어있다.
“올해 소극장 어쿠스틱 공연을 기획한 것도 그런 이유였죠. 사실 소극장 전국투어 공연도 성공적이라고 하긴 어려워요. 그래도 소극장 공연을 하면서 활력을 조금씩 찾았죠. 제목이 민망하긴 하지만 ‘공연지신’(公演之神)이라는 타이틀로 크리스마스(12월 23일부터 25일 3일간) 공연을 하는 것도 그 활력의 연장선에서 기획 된 거고요.”
실제로 이승환은 20년 넘게 1천회가 넘는 공연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같은 콘셉트의 공연을 만들어 본적이 없다. 공연에 개별 타이틀을 붙인 것 자체가 그가 시초다. 또 ‘역대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스스로 갈아치우며 막대한 물량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왔다.
“좋은 공연은 수익이 남지 않는 공연이더군요. 기존에 있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걸 만드는 작업에 돈이 많이 들어가요. 그건 고스란히 공연의 퀄리티로 이어지거든요. 난생 처음 본 것, 말도 안 나오는 것 이런 것들 말이죠.”
“저는 누구보다 가창력이 떨어질 수도 있고, 쇼적인 것이 떨어질 수도 있죠. 하지만 공연 연출, 에너지, 연주, 사운드 이런 것들에 총점을 다 매길 수 있다면 대한민국에서는 제가 1위라고 생각해요.”
‘1위’라는 말과 함께 순간 이승환의 눈이 번뜩였다. 전체적인 연출과 사운드에서 무대의상, 작은 소품 하나까지 본인 스스로 챙기며 공연을 만들어 가는 완벽주의자만 가질 수 있는 자부심 같은 것. 또 그 자부심은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통제에서 비롯된다.
“1년에 두 번 공연 콘셉트를 새롭게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 몸이 아니라 마음이 늙는 것을 경계한다. 부조리한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타고난 혐오가 있어 지금까지는 잘 버텨왔던가 보다. 물론 몸 관리도 잘 해야 한다. 나는 ‘직장인 로커’라는 생각으로 자기절제를 하고 있는 중이다.”(웃음)
인터뷰 막바지 즈음 이승환은 롤링스톤즈 얘길 한참 동안 펼쳐 놨다.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무대 위에서 엉덩이를 섹시하게 흔드는 믹 제거를 보면서 자기는 아직 멀었다는 내용이었다. 다행인 것은 믹 제거가 이승환에 비해 젊은 시절 100배는 방탕하게 살았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승환이 그 보다는 더 오래 무대 위에 설 수 있을 것 같다. 고맙게도 말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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