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김혜은은 “거울을 보면서 내가 섹시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감독님이 이번에 일깨워준 것 같아요. 캐스팅 될 때 제가 그랬거든요. 저에게는 샤론 스톤 같은 모습은 없다고요. 섹시함이라는 ‘무기’를 소지 않은 배우를 믿고 함께 가도록 해준 용기가 대단해요. 어떤 감독도 안 했을 것 같은데 말이죠.”(웃음)
김혜은은 캐스팅이 된 뒤, 요염한 매력을 뽐낸 샤론 스톤처럼 보이려고 그가 출연한 영화를 봤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자신과 멀어지는 것 같더란다. “여자로서 자존심 상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내게 그 코드가 없는 것 같았다”고 솔직했다.
돌아온 윤 감독의 답변은 그에게 힘이 됐다. “감독님이 ‘XXX라는 배우가 예쁜 배우라고 생각하나요? 좋아요?’라고 물으시더라고요. 저는 좋다고 하니깐 감독님이 ‘난 싫다’라고 했는데, 이유는 ‘그 사람은 자신이 예쁘고 섹시하다는 걸 알아요. 예쁜 척하는 게 연기에서 보이는데 그래서 싫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김혜은은 처음 배우들을 만난 자리에서 출연 이유를 묻는 최민식에게 “언제 선배님을 때려보겠어요”라고 대답했단다. 머리채 잡고 막무가내로 싸우는 신이 들어갔지만 그렇게 자연스럽게 김혜은의 연기는 극에 녹아났다.
에너지를 폭발시켰다고 해야 할까?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는 여사장 역할. 그는 너무 열심히 하려다 보니 담배를 직접 피기도 했다. 4~5개월을 연습했다. 하루가 넘게 촬영하며 1980년대 유행한 독한 담배 ‘장미’ 탓에 잠시 기절하기도 했단다.
김혜은은 이렇게 열심히 한 것도 최민식 선배 때문이라고 했다. “내 꿈은 여자 최민식이 되는 것”이라며 “가슴이 따뜻하고 속이 깊다. 나는 크리스천이라는 신앙을 가지지만 선배는 연기가 신앙인 것 같더라”고 웃었다.
드라마에도 나오는 그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녹화장보다 배운 게 많았다고 좋아했다. 특히 최민식의 가르침이 도움이 돼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자기를 나눠주시는 분들은 드물어요.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하는 선배들이 없는데 최민식 선배는 너무 인간적이셨어요.”(웃음)
“그 일에 비전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40대 후반을 생각해봤을 때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죠. 그때는 정말 최고의 자리였는데 대접받고 싶어 하는 것을 벗어던진 거죠. 거칠고 험난한 길을 좋아하거든요. 김혜은은 술집여성이 될 수 없지만, 배우는 술집 여성이 될 수 있잖아요?”(웃음)
2007년 드라마 ‘아현동 마님’에 참여할 때 보수적인 남편은 출연을 반대했다. 촬영 중인데 무작정 하차하라고 했다. 다른 사람과 이성적인 관계로 나오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김혜은은 “중간에 하차할 수 없으니 ‘아현동 마님’만 하고 그만 하겠다고 했는데 이후에 ‘태양의 여자’ 시놉시스를 남편이 먼저 보고 ‘이건 꼭해야 한다’고 했어요”
반대한 남편이 든든한 지원자가 된 셈이다. 김혜은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강조했다. “사람들은 방송사에 있었던 이유나 다른 연유로 드라마에 나오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저는 진짜 모두 오디션을 보고 들어간 거예요. 이 영화도 마찬가지고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향한 비판이라면 비판이다. 그가 말한 것처럼 ‘범죄와의 전쟁’ 속 연기를 보면 당연히 캐릭터 매력과 연기 때문에 합류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영화는 노태우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선포된 ‘범죄와의 전쟁’을 소재로 했다. 부산항의 전직 세관 공무원 최익현과 조직폭력배 최형배(하정우)를 통해 1980~90년대의 어두운 뒷모습을 씁쓸하게 담아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 사진 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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