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요즘 최고 대세인 그를 만나기에 앞서 괜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뜨더니 변했다는, 연예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뒷담화’가 혹시 그에게도 통할까?
하지만 웬 걸. 결론부터 말하자면 놀라울 정도로 초심 그대로라 조금이나마 짓궂은 의구심을 품었던 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각시탈’을 쓰고 ‘국민 영웅’이 됐다가 ‘1박2일’ 여행지에선 ‘국민 막내’로 돌변하는 변화무쌍한 이 남자의 매력은 꾸밈 없이 솔직함, 주원 그 자체였다.
드라마 종영 후에도 쉴 틈이 없었기 때문일까. 충무로에서 만난 주원은 아직 ‘각시탈’ 6개월 여정의 여독이 남은 듯 했다. 지독한 수면 부족과 체력 저하로 촬영 후반부에는 몸이 안 좋아질 정도였지만, 링거를 맞을 시간조차 없는 강행군. 주원은 “정신력으로 버텼다”고 털어놨다.
‘각시탈’ 하나만 보고 달려온 반 년이었다. 아무리 만남 뒤엔 헤어짐이 있다지만 아쉬움이 제법 커, 허무함 수준이다. “3월부터 미친듯이 달려왔는데, 하루 아침에 끝 하고 나니 개인적으로는 허무함이 컸어요.”
뮤지컬 무대에서 활약하던 주원이 ‘제빵왕 김탁구’에 발탁된 건 순전히 그의 가능성을 본 캐스팅이었다. 하지만 후속작 캐스팅은 단순 가능성이 아닌, 그가 보여준 놀라운 재능에 따른 결과였다. 주원의 가능성에 주목했던 관계자들은 그의 재능이 심상치 않음을 캐치했고, 주원은 그들의 부름에 응답, ‘각시탈’에 합류하게 됐다.
주원은 극중 친일파 순사 이강토 역을 맡았다. 이강토는 각시탈을 쓴 형(신현준)과의 운명적인 대결 후, 그 뒤를 이어 각시탈을 쓰고 독립 항쟁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친일파 이강토와 국민 영웅 각시탈. 어찌보면 양 극단의 인물이다. 강토가 각시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까지 사실상 1인2역이나 다름없었다. 주원은 두 역을 소화하는 게 “제일 머리 깨지는 순간”이라고 했다.
“극 속에서 심리전을 해야 하는데 저(주원) 스스로도 심리전을 하고 있었어요. 굉장히 머리가 아팠죠. 슌지만 속일 것인가, 시청자 모두를 속일 것인가. 연기하는 것뿐 아니라 그 모든 게 고민이었어요.”
이강토가 각시탈을 쓰게 되는 과정의 고뇌를 주원 또한 고스란히 함께 했다. “강토도 그랬지만 저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굳이 탈을 써야 하나 생각했죠. 초반에는 탈을 쓰는 이유가 불분명했잖아요. 하지만 갈수록 목표 의식이 생긴 것 같고, 저 역시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강토와 비슷한 목표가 생겼어요.”
찜통 더위에 얼굴의 반을 가리는 탈을 쓰고 연기하기란 고역이었다. 잘 생긴 얼굴을 가려 아쉽다는 평이 있었다 하자 “얼굴을 가리는 게 좋았다”며 쑥스러운듯 배시시 웃는다.
“처음 각시탈을 썼을 땐 되게 어색했어요. 답답하고 빨리 벗고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제 얼굴이 된 듯 했죠. 얼굴에 붙어있는 것 같았어요. 하루 종일 쓰고 있어도 갑갑하지도 않았고요.” 그렇게 그는 진짜 ‘각시탈’이 됐다.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 가운데서도 그는 각시탈이 되기 전 이강토에 더 공감했단다. “개인적으론 초반의 아픔이 더 컸다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이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 하지만, 가족을 위해 꿋꿋이 일하고, 그러다 사랑하는 엄마와 형이 죽고, 또 친구와 적대시될 수 밖에 없던 초반의 감정이 더 와닿았습니다.”
“기웅이형은 정말 마음이 열려 있는 분이고, 대본 분석도 굉장히 철저했어요. 정말 많은 준비를 해오시죠. 제가 어떻게 연기해도 형은 그대로 받아주셨는데 그게 참 고마웠어요.”
컷이 끝나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넘쳐 흐른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감정이 이렇게 올라온 상태에선 컷 한다고 해서 여운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더군요. 컷 하고도 계속 울었던 적도 있어요.”
그는 이번 작품에서의 목표가 있었다 했다. “최대한 다 내려놓겠다는 생각으로 했어요. 화면에 어떻게 나올까, 그런 신경은 모두 내려놓기로 했죠. 정말 실제라는 생각으로 임했고, 그랬기 때문에 더 눈물도 계속 나고 여운이 많이 남은 것 같아요.”
‘각시탈’ 이후 주원에게는 ‘애국청년’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고 있다. ‘시청률의 사나이’도 모자라 ‘애국청년’까지. 어떤 게 더 부담되는 표현인지 묻자 “둘 다”라며 손사래 쳤다.
“둘 다 부담돼요. 둘 다 부끄럽고 낯 간지럽고.” 급기야 주원은 고개를 푹 숙이고 그 자리에 엎드려 버렸다. “저 역시 우리나라 사람의 마음과 똑같아요. 한국을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은 다 똑같다 생각해요. 모든 배우들, 모든 분들이 같은데 뭔가 이 작품을 함으로써 애국청년이 돼 굉장히 부끄럽습니다.”
드라마를 본 많은 사람들이 떠올려 볼 질문. 실제로 일제 강점기를 살았다면 어땠을까? 주원 역시 생각해봤다 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이라 말하기 참 힘들다” 했다. 그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접 경험한 그의 답변이기에 왠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더 왔죠. 크게 욕심 부리지 않았었는데. 그저 어떤 작품이든 열심히 하고, 선배님 선생님들께 많이 배우면서 조금씩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할 뿐입니다. 튀어 보이겠다고 특별히 욕심내나 이것저것 다 하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내가 하려던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정말 운이 좋았죠.”
급성장 추세에 맞춰 배우로서의 계획이나 먼 미래의 청사진을 조금 달리 그리게 된 건 없을까. 혹시 ‘궤도 수정’을 하진 않았을까 궁금했는데 “그런 건 없이 똑같다”고 했다.
“작품이 잘 된 지금도, 혹시 잘 안 됐더라도 그랬을 거예요. 지금까지 해온 것들과 똑같을 거예요. 이게 가장 편하고, 욕심 부리는 순간 안 될 거라는 생각이 확고하거든요. 반대로 욕심을 버리는 순간 잘 풀릴 거고. 연기적인 욕심은 있지만 제가 잘 되겠다는 욕심은 끝까지 안 부릴 겁니다.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1년, 10년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저도 선생님들처럼 좋은 연기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겸손이 몸에 밴, 나긋나긋하고 담담한 태도의 주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뜨더니 변했다는 말을 듣는 분들도 사실 적지 않은데요.” 진지한 표정의 그가 답했다. “사실, 때론 저 스스로 변했다는 걸 느끼기도 해요. 아마도 변하는 건, 주위의 대우라던가 그런 영향을 많이 받게 되겠죠. 생각지도 못하게, 자기도 모르게 변하게 되는 거죠.”
국경을 넘어 차세대 한류스타로의 부상이 일찌감치 예약돼 있는 그이지만, 언제 만나도 지금 모습 그대로일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 한시간 여의 인터뷰 내내 든 이 느낌이 왠지 틀리지 않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팽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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