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균(32). 실력파로 정평난 밴드 세렝게티에서 보컬과 베이스를 맡고 있는 든든한 맏형이자 JK김동욱, 진한서와 함께 프로젝트 재즈 트리오 지브라로 쉼 없이 활동하고 있는 그는 바쁜 와중에도 솔로 앨범을 뚝딱뚝딱 만들었다. 마치 직접 운영 중인 무료 책방의 나무 책장을 직접 만들듯이.
솔로 앨범에 대한 목표를 갖고 곡 작업을 해온 지는 벌써 3~4년이 흘렀다. 앨범 발매 시기를 세렝게티 동생들(정수완·장동진)이 국방의 의무를 위해 밴드 활동을 중단한 시점으로 잡은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팀 음악을 할 때는 세렝게티만의 스타일, 열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그런 음악을 고집해왔는데,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어쿠스틱하고 조용한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들어보시면 세렝게티 음악과는 아마 많이 다를 겁니다.”
앨범 자켓 사진은 무려 직접 찍은 ‘셀카’다. 기존 세렝게티 음반이 동물이나 풍경으로 채워졌던 것을 생각하면 파격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그와 썩 잘 어울리는 아날로그 감성의 로모그래피 사진이다. 유정균은 “첫 솔로 앨범인만큼 내가 찍은 내 사진을 보여드리는 게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에 용기를 냈다”며 쑥스러워했다.
총 11곡이 수록된 정규 1집 ‘외롭지 않을 만큼의 거리’는 오랜 활동 기간만큼이나 깊이 있는 내공이 돋보인다. 코끝을 알싸하게 스치는 가을바람, 높푸른 하늘과 유난히 잘 어울린다. 그 속엔 어떤 노래,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장르적인 접근 보다는 이야기를 담은 내용의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소설처럼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닌, 일기나 수필, 일상의 풍경에 대한 단상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들요.”
실제로 오래 전부터 써왔던 일기에서 가사의 영감을 얻었다. 꾸준히 써 온 일기는 1번 트랙 ‘그리워라’부터 시작해 11곡 모두에 큰 영향을 줬다.
“당시 고양이를 키웠는데, 항상 저와 거리를 두고 있는 고양이에 대한 일기였어요.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나면 외로우니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고, 완벽한 거리를 두고 있는 고양이라는 일기를 쓴 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제가 사랑했던 사람과 그런 거리에 놓인 적이 있었어요. 당시의 사건을 노래로 만들었죠.”
4번 트랙 ‘니가 부는 날’은 매 주 수요일 울산으로 ‘뒤란’ 녹화를 위해 기차를 타고 다니던 차창 밖을 바라보며 사색을 하다 써내려간, 바람 그리고 구름에 관한 곡이다.
5번 트랙 ‘해요’에는 과거 오랫동안 만났던 친구와 헤어지는 장면을 담았다. “유난히 잊혀지지 않는 그런 장면 있죠. 영화에서 어떤 한 장면이 기억에 남듯, 그런 장면의 이야기를 담아냈습니다.”
타이틀곡인 7번 트랙 ‘낙엽 톡톡톡’은 낙엽이 계절이 변하는 동안 남기는 이야기를 담았다. “나뭇잎의 생각에 귀를 기울인” 가사가 인상적이다. 이밖에 외할머니께 어려서부터 들었던 이야기, 6.25 전쟁의 비극을 떠올리며 만든 6번 트랙 ‘이산가족’은 짧지만 강렬한 시 같기도 하다.
곡 편성을 살펴보면, 여백을 늘린 대신 악기 수는 줄였다. “늘어난 여백은 청자의 생각, 공감대로 채울 셈”이라 했다.
2년 전부터 기타 레슨을 해준 데이브레이크 정유종을 비롯해 언니네이발관 이능용, 싱어송라이터 임주연, 프로젝트 밴드 지브라의 진한서 등 다수의 뮤지션이 앨범에 참여했다. 음악으로 맺어진 ‘인연’이 엮인 ‘품앗이’가 훈훈하다.
유정균이 음악 활동 초창기부터 세션으로 활동했던 언니네이발관 멤버 이석원은 동료이자 후배인 그의 첫 앨범을 정성스럽게 소개했다. 그는 이번 앨범, 그리고 유정균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책장이 필요하면 가구점에 가서 규격화된 공산품을 사는게 아니라 나무랑 톱 망치등을 가져다 본인이 뚝딱 뚝딱 직접 만들어 쓰는 그런 사람인데 그래서 이 앨범은 마치 목수가 만든 책장같다’...‘당신이 이 앨범을 만나게 되면 그건 단순히 하나의 음악이나 한 장의 앨범을 듣는 게 아니라 어떤 한사람을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할 것이다’
“형이 써준 글처럼, 앨범 자체가 제 홈페이지에 있는 수많은 일기 중 열 한 가지 이야기로 채워진만큼 앨범을 듣다 보면 유정균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구나,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되실 겁니다.”
음악은 편안하지만 그 음악을 위한 작업량은 처절할 정도로 치열해 보인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차분한 시간을 가지려 해요. 나 자신에 대해, 감정을 들여다 볼 시간이 없을 만큼 너무나 빨리 돌아가는 세상이잖아요. 그래서 자꾸 걷고(웃음), 그런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쉽 없이 해온 작업의 결과물은 실로 창대하다. 스물여섯 살에 세렝게티를 처음 결성한 뒤 꾸준히 앨범을 냈고, 사이사이 세션 활동도 쉬지 않았다. 지브라로 활동하는 가운데서도 정규 앨범을 발매했으니, 말 그대로 음악은 유정균의 삶 자체였다.
“앨범을 내고 활동하면서 작업도 병행했으니, 정말 쉬지 않았네요. 음악 하는 일이 꼭 한량 같다거나 그리 여유로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지난 9월, 앨범 정식 발매에 앞서 ‘음감회’를 통해 솔로 첫 작품을 들려준 유정균은 오는 11월 2일 홍대 벨로주에서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진행하고 팬들과 만난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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