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의 장점은 여러 편의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데 있다. 감독들은 한 가지 소재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양하게 전한다.
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 ‘가족 시네마’는 실직 가장과 골드미스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4개의 단편이 각자 상황에 처한 관객들의 가슴에 와 닿을 만하다.
영화는 갑작스레 실직한 남편(정인기)이 시간을 때우려 올라탄 지하철 ‘순환선’(감독 신수원)으로 시작된다. 남자는 곧 둘째가 태어나는데 앞이 캄캄하기만 하다. 할 일 없이 순환선을 타고 다니다 분유값을 구걸하러 다니는 여자를 만나게 되고, 안타까운 현실을 사는 두 사람은 묘한 동질감을 전하며 관객의 뇌리에 박힌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카날플러스상을 받은 작품이다. 남자의 심리 묘사가 특히 돋보인다.
‘인 굿 텀퍼니’(감독 김성호)는 30~40대 직장인들에게 상당히 끌릴만한 작품이다. 일과 직장, 그리고 임신을 대하는 이중잣대. 영화는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고 묻는 듯하다. 그 질문은 무척이나 어렵다.
모큐멘터리 형식을 띈 영화는 여성들이 많이 근무하는 영진기획 사보팀에서 시작한다.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다른 사람들이 힘들게 된 강도 높은 프로젝트를 맡게 된 사보팀. 남자 팀장(이명행)은 밤샘 근무가 이어지자 출산을 앞둔 부하 직원에게 권고사직을 권한다.
임신한 동료의 편이었던 여성들은 당연한 권리를 받지 못한다며 태업을 선언한다. 하지만 이내 하나 둘 업무로 복귀한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막내는 또 다른 직장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며 팀장의 손을 가장 먼저 잡는다. 다른 여직원들도 별 수 없다. 취업난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여성의 불평등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팀장은 만삭의 아내가 유치원에서 일하다 쓰러지자 직원들을 쥐어짤 때와 달리 프로젝트 일을 뿌리친 채 직장을 나와 아내의 직장으로 향한다. 119차를 불러 병원으로 향하는 찰나 아이들만 유치원에 놔둘 수 없어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한 아이의 학부모가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남자의 뺨을 때리며 “당신을 유괴범으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따진다.
출산과 육아를 대하는 실제 직장의 단면이 신랄하다. 권고사직 상황에 대해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인터뷰하는 상황 설정은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별 모양의 얼룩’(감독 홍지영)은 1999년 ‘씨랜드 화재 사건’을 모티프로 가슴 아픈 과거를 이야기 한다.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부모들이 아이들을 가슴에 묻고 산 지 1년 후 이야기를 담았다. 여전히 아이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엄마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려 애썼다. 김지영의 모성애 가득한 엄마 연기가 탁월하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난자 매매로 태어난 아이가 실제 엄마를 찾아와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E.D. 571’(감독 이수연)은 약간 이질적이다. 직장에서 나름 성공한 골드 미스(선우선)가 생물학적 딸임을 주장하고 나타난 아이를 만나 대립한다. 부모가 이혼했으니 생물학적 엄마에게 법적 후견인이 돼 달라고 하는 아이와 이를 거부하는 여자의 싸움이 긴장감을 준다. 세상에 태어나는 걸 스스로 결정한 인간은 없지만, 끝까지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메시지가 여운을 남긴다. 125분. 15세 이상 관람가. 8일 개봉.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