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대명사로 불리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진 22일 간의 잔인한 기록을 담은 실화.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자전적 수기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물론 혹독한 고문을 담은 영화지만 과거를 통해 미래를 향해 진전할 수 있는 길도 담았다.
박원상이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 김종태를 연기해 김 상임고문을, 이경영이 이두한을 연기해 희대의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떠올리게 한다. 이경영의 만행에 분노가 이는 것은 당연하고, 그 고문을 온몸으로 겪어야 하는 박원상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고문을 받는 듯 고통스럽다.
“이 역할을 누구한테 하라고 하기는 힘들었죠.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게 전부고, 또 고문을 당하는 것이니 보통 힘든 연기가 아니었거든요. 솔직히 ‘부러진 화살’에서 안성기를 캐스팅 했으니 이번에 적어도 안성기 급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거절하더라고요. 박원상은 ‘부러진 화살’에서 함께 했으니 나를 전폭적으로 신뢰할 것이라고 생각해 잡았죠. 물론 박원상도 이미 내가 다른 배우들에서 헤매다가 온 것을 알고 있을 테니 만났을 때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못된 감독한테 연기로 복수하는 것 밖에 없다’고 했어요. 그 복수는 성공한 거죠.”(웃음)
정 감독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털어놓으며 “그 자체는 성공적이라서 좋은데 그것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간 관객들이 ‘이 영화 힘들어. 보지마’라고 할까봐 걱정이다. 힘들지만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 말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정 감독은 ‘남부군’(1990), ‘하얀전쟁’(1992),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 ‘부러진 화살’로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것이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다른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않아서인지 궁금했다.
정 감독은 “가장 잘 하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 것이니까 한다”며 “다양한 시도를 해봤는데 이런 작품을 할 때 사람들이 더 재밌게 보고, 나 또한 보람도 느낀다.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 되는 것 같다”고 웃었다. 이어 “완전한 상업영화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는 못 만들 것 같다”며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한다. 이번에 ‘부러진 화살’보다 관객이 더 드는 사건이 생긴다면 내가 생각해도 난 대단한 놈 같다고 느낄 것”이라고 웃었다.
그는 ‘부러진 화살’ 때도 그랬지만, ‘남영동 1985’를 만들면서 정치적인 외압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내게 압력을 가하면 자기들한테 손해라는 것을 안다”고 웃었다.
그에게 ‘돌직구’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돌직구는 원래 야구에서 구위 좋은 직구를 일컫는다. 제대로 공을 쳐도 멀리 뻗지 못하는 직구. 인터넷에서 이 표현은 거론하기 힘든 주제를 거침없이 밝히고 지적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돌직구라는 말을 잘 몰랐던 정 감독은 설명을 해주자 “아마 돌은 아닌 것 같다”고 웃으며 “돌을 맞으면 아파해야 하는데 아파하지 않더라. 누가 아파했나”라고 아쉬워했다.
정 감독은 1년 정도 작품 활동을 쉬다 아이들과 관련한 이야기를 만들 예정이다. 그에 앞서 한국영화계에 비판적인 칼날을 세운 영화 ‘영화판’으로 관객을 다시 찾는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