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자사용설명서’는 온갖 궂은일을 도맡으면서도 남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CF 조감독 최보나(이시영)가 우연히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법이 담긴 비디오테이프 ‘남자사용설명서’를 얻게 되면서 톱스타 이승재(오정세)의 마음을 사로잡는 과정을 담았다.
솔직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찬밥 덩어리가 매력녀가 돼 성공과 사랑 모두를 얻는다는 이야기. 어찌 보면 빤할지 모를 스토리라고 할 수 있지만, 절대 그게 다가 아니다.
영화는 신인 이원석 감독의 특별한 정신세계를 온전히 담아냈다. 복잡한 논리를 담고 있어 머리를 써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컴퓨터그래픽(CG)과 애니메이션 효과 등을 이용해 재기 발랄하게 화면을 구성했다. 촌스러운 듯하면서도 시선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을 풍긴다.
이론과 실전이 담긴 ‘남자사용설명서’ 내용도 1980년대 후반이나 90년대 초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교육관 닥터 스왈스키(박영규)와 두 명의 외국 남녀가 등장해 여러 가지 비기(?)를 알려주는데 처음에는 ‘이게 뭐야? 장난해?’라는 반응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매력에 점차 빠져드는 걸 경험하게 된다. 신인 감독의 독특한 시선과 새롭게 접근하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물론 ‘남자사용설명서’라는 설정이 유치하다고 무시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방법이 은근히 통하는 게 많다. 남자에게 미소를 난리는 1단계부터 그렇다. 남성들은 ‘혹시, 이 여자가 나를 좋아하나?’라는 생각 혹은 착각을 한 번쯤 하게 되는 게 당연지사. 극 중 질투심 유발 작전이나 여자를 정복(?)하려는 욕구 등에 대한 묘사도 남녀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보나와 원나잇 스탠드로 끝내려던 승재가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다시 또 보나를 쟁취하려는 장면도 웃음이 난다. 궁극의 ‘밀당’ 비법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문자와 전화도 받지 않는 등 승재를 달아오르게 한 보나는 잘못 보낸 척 문자를 보내고, 펜션으로 승재를 불러들인다. 프로덕션 식구들의 엠티였는데 승재는 그것도 모르고 가운만 입고 보나를 기다린다. 사람들이 들이닥치자 허겁지겁 나체로 도망을 가고, 음주 단속까지 걸리는 과정이 배를 잡고 웃지 않을 수 없다. 이 밖에도 틈이 날 때마다 폭소가 쏟아진다.
관객을 웃기려는 노력이 돋보이고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멜로 분위기에서도 웃기고, 진지한 장면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에만 초점을 맞춘 건 아니다.
거친 세계에서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여성의 현실도 녹아있다. 5년 동안 제대로 씻지 못하고 가꾸지 못한 채 조감독으로 일했지만 돌아오는 건 없었다. 남자들에게 둘러싸였지만 무시당하기 일쑤인 약자. 그런 보나에게 구원처럼 나타난 ‘남자사용설명서’는 판타지일 수밖에 없지만, 이를 원하고 바랐던 이유를 말하는 보나에게 절실함이 묻어나니 확인해 보시길.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