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들이 기다리는 사람은 해당 프로그램의 PD다. PD가 대기실 쪽으로 내려와 한꺼번에 가수들의 인사를 받는다. 90도 인사에 각 팀마다 자신들이 개발한 구호를 큰 소리를 외치는 것은 당연하다. 가수들이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 복도에 약 30분 동안 서서 기다리는 이유다.
프로그램 마다 차이는 있지만 가요 프로그램 리허설 및 사전녹화는 빠르면 오전 8시부터 시작된다. 끝나고 PD에게 인사를 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짧게는 6시간에서 길게는 12시간까지 방송사에 발이 묶이는 셈이다. 1회 출연료가 40만원 안팎인 점을 감안할 때 기회비용에서 상당한 손실이다.
한 가수 매니저는 “순위가 있는 가요 프로그램은 순위 발표에 모든 출연자가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기다려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모든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가수들이 남는다. 방송 스케줄이 공식적으로 끝나는 것은 PD에게 인사를 하는 순간이다”며 “특별히 급한 사정이 없으면 대부분의 가수가 이 시간까지 남아있다. 웬만한 일정은 인사하는 시간까지 고려해서 그 이후에 잡는 것이 보통이다”고 말했다.
PD에게 인사를 하고 방송사를 떠나는 것은 오랜 관행이다. 섭외권을 가지고 있는 PD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다. 이 매니저는 “한 주에 방송출연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팀은 15~20개로 한정돼 있어 출연 경쟁이 치열하다. 가능한 PD들의 눈도장을 찍는 것이 중요하고 인사를 하려고 기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가수들은 데뷔 후부터 줄곧 이렇게 해 온 탓에 크게 불만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데뷔 10년 차 이상 가수 중 일부는 종종 이 같은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최근 새 앨범을 발표하고 방송활동을 재개한 가수 A씨는 “오랫동안 갑(甲)의 위치에 있는 방송사 제작진의 권위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잘못된 관행”이라며 “1위 한 가수를 축하해주는 것은 좋지만, 축하하는 영상을 연출하기 위해서 모든 가수가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정말 필요한가? 또 PD와 스치듯 인사를 하기 위해서 자신의 무대가 끝난 뒤에 1시간 이상 씩 기다리는 건 분명 시간 낭비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A씨 역시 자신의 출연 순서가 끝난 후에도 방송사를 떠나지 못했다. 매니저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다. A씨의 매니저는 “가수의 생각은 이해할 수 있지만 매니저 입장은 다르다. 현재 가수뿐 아니라 나중에 신인 가수를 데리고 방송 출연을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때 PD에게 흠 잡힐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수는 여기까지가 공식 스케줄이지만 매니저의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프로그램 스태프 전체에게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보통은 1위를 하거나, 그 주에 컴백 무대를 가진 팀의 매니저들이 식사비용을 나눠서 결제한다.
불필요한 관행으로 보이지만 일면 나름의 이유도 있다. 방송사 관계자는 “프로그램이 끝난 후 인사를 나누며 가수들과 간단하게 한두 마디씩 그날 방송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고쳐야 할 부분을 지적하거나, 잘한 부분에 대해 격려도 한다. 함께 방송을 만드는 파트너로서 서로 얼굴도 익히고 수고했다는 의미의 인사를 나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PD들 중 일부는 방송 후 인사를 따로 받지 않기도 하며 매니저들이 마련한 식사 자리 역시 불필요하다고 참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관행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PD들도 상당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아이돌 가수 매니저는 “신인, 기성 가수 할 것 없이 신곡은 계속 나오는데 방송 외에는 마땅한 홍보수단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아이돌 가수는 무대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방송 출연에 더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스케줄을 희생하면서 까지 PD에게 인사를 하고 가는 묵은 관행도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