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 중입니다.”
이른 아침, 인터뷰 일정 확인 차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깨어 있었다. 막상 전화를 걸어놓고는 너무 이른 시간인가 싶어 끊을까 망설였는데, 그는 신호가 세 번 넘어가기도 전에 활기찬 목소리를 들려줬다.
샘 해밍턴(35)은 인터뷰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다. 최근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보여준 술꾼(?) 이미지와는 다른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진 청년이었다.
“한국은 밤늦게도 많이 먹잖아요. 원래 삼시 세끼 외엔 잘 안 먹는데, 야식문화를 즐기다 보니 살이 쪘어요. 20kg 정도 감량할 계획입니다.”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 샘, 파란 눈동자를 지닌 그가 머나먼 한국 땅엔 왜 왔을까? 궁금했다.
“프로필 상엔 ‘공대’로 나와 있지만, 실제 전공은 마케팅과 한국어였어요. 남들과 차별화된 이력서를 만들고 싶어서 학생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한국어를 택했죠. 취업에 도움이 될까 하고요. 하하!”
샘은 고려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1년 공부한 뒤, 호주로 돌아가 학사 학위를 받고 다시 한국에 왔다. 그는 인터뷰 내내 ‘운명’이라는 말을 자주 꺼냈다. 그의 다이내믹한 인생을 설명하기에 가장 완벽한 단어였기 때문일까.
“운명처럼 귀국 시기가 한일 월드컵 때와 맞물렸죠. 당시 지인의 소개로 리포터 활동을 하면서 방송을 시작했어요. 이후 재연배우로도 활동했고요.”
부정기적인 방송수입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기엔 한계가 따랐다. 하릴없이 영국계 회사에 취업했다. 그러나 너무 따분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친분이 있던 개그맨 김진철이 “‘개그콘서트’에 출연하겠냐”는 연락을 해왔다.
그게 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개콘’의 ‘하류인생’이라는 코너에 딱 한 번 출연한 게 운명을 바꿔놓았다”며 “김준호씨의 권유로 ‘월드뉴스’를 맡게 되면서 본격적인 (연예)활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이후 두 곳의 소속사에 들어갔지만 처우가 좋지 않았다. 홀로서기를 결심하고 교통방송에서 영어방송 DJ가 됐다. 지난해 9월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생방송을 했다. 이 때문에 다른 방송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라디오스타’ 출연을 몇 번 거절한 것도 아쉬웠지만, 드라마 ‘선덕여왕’ 섭외를 포기할 땐 속이 쓰라렸다.
그는 “복불복”이라며 “잘됐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반대였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당시엔 안정적인 스케줄이 절실했다. 불안한 생활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고 담담히 당시를 돌아봤다.
그러나 4년 동안 월급쟁이로 살면서 ‘너무 쉽게 돈 버는 것 아닌가’하는 자괴감이 들었다는 샘. 그는 ‘노력하며 살자’는 인생의 모토에 따라 라디오 DJ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라디오에 대한 애정은 팟캐스트 채널을 만드는 것으로 채웠다.
한국에 정착한 이래로 대부분의 시간을 방송을 위해 살아온 그는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특별한 어머니를 소개했다.
그의 어머니는 호주에서 유명한 드라마 PD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귀신같은 캐스팅 능력이 있는 분이다. 어머니는 휴 잭맨, 가이 피어스, 카일리 미노그, 제시 스펜서 등이 고등학생일 때 캐스팅을 했다. 뭘 보고 뽑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대단한 스타가 된 걸 보면 어머니가 대단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한국의 ‘전원일기’ 같은 장수 드라마를 만드신 분이다. 20년 동안 한 작품을 만들어 오셨고, 호주 방송계에서 Jan Russ(어머니 성함)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어머니께서 내 힘으로 타국에서 방송인이 된 것을 굉장히 기뻐하신다”며 말할 때, 그는 신이 난 표정으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자주 뵙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씁쓸함도 드러냈다.
지난 달 27일과 지난 6일 두 회에 걸쳐 방송된 ‘라디오스타’에서의 활약에 대해 그는 “미치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대해 “예상하지도 못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같이 출연한 패널들과는 특별한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케미스트리가 좋아서 이만큼 반응이 폭발적인 것 같아요. 또 시기도 적절했던 것 같고요.”
그는 “한국에서 발언권을 행사해도 되는 때를 맞이한 것 같다”며 “나이 먹을 만큼 먹었으니 서슴없이 내 생각을 말해도 될 것 같았다. 겁이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샘은 대학에서 4년 동안 한국어를 공부했고, 한국에서만 11년 산 ‘준 한국 전문가’다. 최근 SNS를 통해 독도 문제에 대한 개념 발언을 하는 등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인다운 모습을 보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역사 관련 책을 많이 읽는다”며 “한국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레 일제 강점기에 관심을 쏟게 됐다. 일본이 자행한 2차 세계 대전, 난징 대학살 등을 접하며 분노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18대 대선에 대한 발언에 대한 질문을 하자 그는 “잘 알지 못 한다”며 “누굴 지지하냐고 묻는데 지지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홍보물에는 세세한 공약(자치구 관련)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 정치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대목이다”고 했다.
또한 “사실 내 꿈은 본국으로 돌아가 ‘정치인’이 되는 것”이라며 “조국(호주)을 위해서 살고 싶은데, 난 돈이 많거나 지식이 많지 않다. 몸 바쳐 일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접 몸으로 배우고 느끼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한다”며 “만일 정치인이 된다면, 외교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샘은 무엇 하나 대충하는 법이 없는 듯 했다.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귀 기울이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고, 언제나 새로운 도전에 몸을 싣는 사람이었다.
2013년의 시작이 밝은 그는 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염은영 인턴기자/사진=팽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