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스크린이 아닌 카페에서 만난 김민희는 뜨겁다기보단 은근하고 따뜻한 멋을 지닌 여배우였다. 비록 ‘인간’ 김민희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배우’ 김민희의 뭉근한 사랑(상대는 연기)을 엿볼 수 있었던 인터뷰의 온도는 마치 그녀와도 같이 꽤나 따뜻했다.
‘화차’를 마친 뒤 받은 ‘연애의 온도’ 시나리오를 단숨에 읽어내렸다고, 망설임 없이 ‘찜’ 했다는 그녀. 차기작 러브콜이 상당했을 법 한데도 ‘연애의 온도’에 대해 단연 “최고였다” 말했다.
“당시 제가 받은 작품 중 최고였어요. 어떤 면으로나 최고였죠. 모든 게 다 마음에 들었어요. 남자 배우보다 먼저 캐스팅 된 후 누가 호흡을 맞추게 될 지 기다렸죠. 이민기씨가 될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민기씨 덕분에 영화가 더 젊어진 느낌이에요.”
어쩌면 영화는 김민희를 위한 맞춤형이었나 보다. ‘화차’에서 선보인 극강의 존재감으로 부일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김민희로서는 일상(?)으로의 파격적인 회귀였다.
사내 비밀연애 커플의 이별 직후를 현실적으로 그린 영화는 초반 깔깔 웃으며 편안하게 볼 수 있지만,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부터 자못 심각해진다. 개인적인 감정에 따라 클라이막스로 느껴지는 장면도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을 법한 이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영과 동희(이민기)의 감정선을 놓치지 않아야 진짜 ‘온도’를 느낄 수 있다.
로맨틱코미디와 멜로, 가상의 리얼 다큐와도 같은 뭐라 특정하기 힘든 영화의 매력을 김민희는 ‘공감’에서 찾았다.
“평범함 속에서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장면이 많았어요. 헤어진 뒤 울면서 집에 들어가 침대에 얼굴을 묻고 울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니 아무렇지 않고, 회사 가는 길에 또 울다가 들어가선 또 아무렇지 않고. 이런 모습이 그냥 제 모습 같았어요. 누군가 ‘괜찮아?’ 물으면 ‘어 괜찮아’라고 답하는 모습도. 저도 그런 편인 것 같고요. 제 3자 입장에서 그런 씬을 보니 재미있더군요.”
헤어진 남자친구와 시비가 붙어 시원하게 욕을 한다거나 욱 하는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영화 속 장영에게 동질감 혹은 대리만족감 중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묻자 철저히 영을 ‘연기’했을 뿐이란다.
“연애 영화 한다고 특별히 기쁜 것도, 싸운다고 특별히 통쾌한 것도 아닌” 편이라 ‘연애의 온도’에 공감한 건 사실이지만 대리만족감을 느끼진 못 했다고. 실제 연인과의 이별 경험에 대해서도 “상대에 따라 이별법도 다른 것 같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그렇다면 ‘연애는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 카피에 대해선 어떤 생각일까. 김민희는 토끼 같은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고 손사래쳤다.
동희 역의 이민기와는 영화라 하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케미스트리로 관객을 미소짓게 했다. 김민희는 “(연기가)정형화되지 않은 부분이 민기씨의 장점인 것 같다”며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았는데, 결과적으로 관객들도 보기 좋았다 하신다면 정말 성공한 거 아닐까”라고 웃으며 반문했다.
“‘연애의 온도’가 김민희 역대 최고의 흥행작이 됐으면 좋겠다”며 배시시 웃는 그녀에게 대놓고 홍보를 부탁했다.
“리얼한 연애 이야기에요. 그렇게 입소문을 타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많은 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결코 아깝지 않은 영화일 거예요. 특별하진 않지만, 좋다고 느끼실 내용이거든요. 19금이지만 노출이 없는데, 낚였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까봐 걱정되요. 절대 노출은 없습니다.”
잡지 모델로 데뷔한 김민희가 연기자의 길을 걸은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청춘 아이콘으로 출발, 이젠 어엿한 연기파 여배우로 성장해 충무로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김민희가 꼽은 연기자로서의 포인트가 된 지점은 노희경 作 ‘굿바이 솔로’다.
“연기가 재미있어진 건 ‘굿바이 솔로’ 때부터였어요. 열정도 커졌고, 이전까지는 난 정말 재능 없는 사람인가보다 생각했었는데, 칭찬을 많이 듣다 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연기가 재미있어요. 확실히. 재미있고 즐거워요.” ‘연기가 재미있다’는 그의 말엔 어느 때보다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무래도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작품을 결정하는 데 가장 많이 작용하는 편인데, 좋은 느낌을 만나는 게 쉽진 않아요. 어떤 측면에선 제가 타협하는 게 부족해서 그간 많은 작품을 하지 못한 것도 있죠. 고민도 되고 때로는 조바심도 들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고르게 되요.”
김민희는 “영이라는 인물은 너무 평범하고 수수한데, 그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며 “아무리 캐릭터가 세고 임팩트가 있어도 나에게 매력이 느껴져야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했다. 김민희가 만들어내는 더 풍부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니, 그녀의 차기작 발표를 기다릴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연애의 온도’ 속 장영을 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는 김민희. 신중하게, 하지만 제대로 꽂힌 그녀의 선택은 왠지 적중한 듯 보인다. 영화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며 김민희가 원했던 그대로 입소문을 제대로 타고 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